
선택의 아웃소싱(해독제 동봉)
넷플릭스를 켠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섹션을 본다. 세 번째 추천작을 클릭한다. 이게 내 선택일까, 알고리즘의 선택일까?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인간이 기억을 외부에 맡겨왔다고 했다.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서 책, 사진, 그리고 지금은 클라우드까지.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게 된 건 전화번호부가 나온 이후고, 길을 외우지 않게 된 건 네비게이션이 나온
표면을 의심하되, 냉소하지 않기. 각주를 달되, 본문을 잊지 않기.
넷플릭스를 켠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섹션을 본다. 세 번째 추천작을 클릭한다. 이게 내 선택일까, 알고리즘의 선택일까?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인간이 기억을 외부에 맡겨왔다고 했다.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서 책, 사진, 그리고 지금은 클라우드까지.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게 된 건 전화번호부가 나온 이후고, 길을 외우지 않게 된 건 네비게이션이 나온
어제 카페에서 옆 테이블 커플을 보다가 깨달았다. 그들은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말에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 회사에서—”“아 또 회사 얘기야?” “그런데 말이야—”“말이 많네.” “이해해줘—”“맨날 이해하라고 하네.” 재채기는 막을 수 없다. 코가 간지러우면 나오는 거니까. 문제는 우리의 소통습관 중에도 재채기 같은 것들이 있다는 거다. 상대방이 뭔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에서 당(Party)이 마지막으로 장악한 건 폭력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였다. 2+2는 5다. 믿거나... 아니면 말거나. 요즘 유튜브(YouTube) 댓글창을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같은 영상을 보고도 완전히 다른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한쪽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이번 캠페인 성공 확률이 80%입니다." 대기업 회의실에서 누군가 자신 있게 말한다. PPT에는 그럴듯한 그래프가 가득하다. 그런데 정작 그 80%가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10번 중 8번? 100번 중 80번? 아니면 그냥 "꽤 높다"는 뜻? 확률은 참 묘하다. 내일 해가 뜰 확률은 100%라고 확신하지만,
"나는 애초에 기대를 안 해서 실망도 안 해." 요즘 이런 말이 인생 철학처럼 떠돈다. 카페에서, 술자리에서, 심지어 링크드인 프로필에서도. 아무것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성숙함의 증표가 된 시대. 루스벨트가 말한 "cold and timid souls"가 오히려 현명한 사람으로 포장되고 있다. 인스타 릴스를 보면 더 재밌다. "
인터넷 블로그가 만사가 아니다. 대면이 있고, 교육이 있고, 유료 멤버십이 있다. 프로덕트 마켓 핏만큼이나 콘텐츠-포맷-플랫폼 핏이 중요하다. 상위 1%를 위한 고급 정보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는 순간, 아무도 찾지 않는다. 찾는다 해도 가치가 떨어진다. 미슐랭 3스타를 편의점에서 훌륭한 요리를 잘못된 장소에서 파는 꼴이다. 전문성 높은 투자 분석을 개인 블로그에 무료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다. 그럼 성공의 아버지는 누구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실패만으로는 성공이 태어나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게 더 필요하다. 스타트업 씬에서는 실패를 자랑하듯 말하는 게 유행이다. "세 번 망했어요", "투자금 10억 날렸어요". 마치 실패 횟수가 명함에 들어갈 스펙인
카페에서 친구가 연애 얘기를 털어놓는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 같아. 또 싸웠어.” 나는 자동으로 입을 연다.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상대방이 이해를 못 하는 거지.” 표준적인 위로다. 하지만 가끔 생각해본다. 정말 이게 맞나? 자책의 재발견 우리는 자책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본다. 자존감을 깎아먹고, 우울하게 만들고, 발전을 막는 독이라고. 그래서 위로할
게임이 끝났다. 드라마 작가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영화감독이 완벽한 키스신을 찍어도, 소설가가 마음을 울리는 대사를 써도 소용없다. 연애 감정이라는 링에서 픽션은 리얼리티에게 KO당했다. '환승연애'에서 전 연인이 서로를 힐끔거리는 0.3초가 드라마 한 시간보다 더 가슴을 뛰게 한다. '모솔연애'에서 어색하게 손을 잡는 장면이 영화 속
인도의 한 개발자가 심심해서 해본 장난이 AI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아비셰크 아이어(Abhishek Iyer)라는 전직 구글러가 "졸라텍스(Zollatex)"라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만들어서 적당한 뜻을 붙였다. 그리고 아무도 링크하지 않는 외딴 웹페이지에 올렸다. 마치 무인도에 메모지를 묻어두는 것처럼. 단 하나의 통로만 열어뒀다. 구글 서치 콘솔. 며칠 뒤
예전에 경쟁의 본질에 대해 썼었다. 마이클 포터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제발 좀 그만 싸워라"였을 거라고. 그런데 아사나(Asana)라는 회사가 이걸 완벽하게 실행한 사례를 봤다. 트렐로(Trello)와 비교당할 때 딱 두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사나는 업무 관리 시스템입니다. 트렐로는 칸반 보드예요." 게임 끝.
친구가 토익 공부한다며 투덜댔다. "처음엔 하루 2시간씩 공부해서 점수가 쭉쭉 올랐는데, 요즘엔 4시간씩 해도 5점도 안 오른다." 아, 그 지점에 도달했구나.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레벨 1에서 10까지는 슬라임 몇 마리만 잡으면 되지만, 90에서 91로 가려면 던전을 며칠씩 돌아야 한다. 경험치는 똑같이 쌓이는데 필요한 양이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공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