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라는 안락함 "나는 애초에 기대를 안 해서 실망도 안 해." 요즘 이런 말이 인생 철학처럼 떠돈다. 카페에서, 술자리에서, 심지어 링크드인 프로필에서도. 아무것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성숙함의 증표가 된 시대. 루스벨트가 말한 "cold and timid souls"가 오히려 현명한 사람으로 포장되고 있다. 인스타 릴스를 보면 더 재밌다. "
콘텐츠가 있다면 플랫폼을 고르세요 인터넷 블로그가 만사가 아니다. 대면이 있고, 교육이 있고, 유료 멤버십이 있다. 프로덕트 마켓 핏만큼이나 콘텐츠-포맷-플랫폼 핏이 중요하다. 상위 1%를 위한 고급 정보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는 순간, 아무도 찾지 않는다. 찾는다 해도 가치가 떨어진다. 미슐랭 3스타를 편의점에서 훌륭한 요리를 잘못된 장소에서 파는 꼴이다. 전문성 높은 투자 분석을 개인 블로그에 무료로
실패를 사랑한다는 거짓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다. 그럼 성공의 아버지는 누구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실패만으로는 성공이 태어나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게 더 필요하다. 스타트업 씬에서는 실패를 자랑하듯 말하는 게 유행이다. "세 번 망했어요", "투자금 10억 날렸어요". 마치 실패 횟수가 명함에 들어갈 스펙인
위로는 고정적이지 않다 카페에서 친구가 연애 얘기를 털어놓는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 같아. 또 싸웠어.” 나는 자동으로 입을 연다. “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 상대방이 이해를 못 하는 거지.” 표준적인 위로다. 하지만 가끔 생각해본다. 정말 이게 맞나? 자책의 재발견 우리는 자책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본다. 자존감을 깎아먹고, 우울하게 만들고, 발전을 막는 독이라고. 그래서 위로할
연애 감정의 완전한 역전 게임이 끝났다. 드라마 작가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영화감독이 완벽한 키스신을 찍어도, 소설가가 마음을 울리는 대사를 써도 소용없다. 연애 감정이라는 링에서 픽션은 리얼리티에게 KO당했다. '환승연애'에서 전 연인이 서로를 힐끔거리는 0.3초가 드라마 한 시간보다 더 가슴을 뛰게 한다. '모솔연애'에서 어색하게 손을 잡는 장면이 영화 속
ChatGPT가 구글 몰래 베끼는 법 인도의 한 개발자가 심심해서 해본 장난이 AI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아비셰크 아이어(Abhishek Iyer)라는 전직 구글러가 "졸라텍스(Zollatex)"라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만들어서 적당한 뜻을 붙였다. 그리고 아무도 링크하지 않는 외딴 웹페이지에 올렸다. 마치 무인도에 메모지를 묻어두는 것처럼. 단 하나의 통로만 열어뒀다. 구글 서치 콘솔. 며칠 뒤
경쟁사를 외계인으로 만드는 포터의 진짜 의도 예전에 경쟁의 본질에 대해 썼었다. 마이클 포터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제발 좀 그만 싸워라"였을 거라고. 그런데 아사나(Asana)라는 회사가 이걸 완벽하게 실행한 사례를 봤다. 트렐로(Trello)와 비교당할 때 딱 두 문장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사나는 업무 관리 시스템입니다. 트렐로는 칸반 보드예요." 게임 끝.
90점에서 95점이 더 어려운 이유 친구가 토익 공부한다며 투덜댔다. "처음엔 하루 2시간씩 공부해서 점수가 쭉쭉 올랐는데, 요즘엔 4시간씩 해도 5점도 안 오른다." 아, 그 지점에 도달했구나.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레벨 1에서 10까지는 슬라임 몇 마리만 잡으면 되지만, 90에서 91로 가려면 던전을 며칠씩 돌아야 한다. 경험치는 똑같이 쌓이는데 필요한 양이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공부도
에너지 에너지의 유통기한 편의점 알바를 해본 사람은 안다. 유통기한 관리의 중요성을.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유통기한이 있다. 오늘 아침에 충전한 집중력을 저녁까지 안 쓰고 놔두면 썩는다. 썩은 에너지는 불안감으로 변한다. 밤에 잠이 안 오고, 쓸데없는 생각이 맴돈다. 유튜브 쇼츠를 새벽까지 보게 된다. 반대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고갈되면 재고부족 상태가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일을 보이게 하는 법 스타트업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있나요?"라는 질문만큼 답하기 어려운 게 없다. 다들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정작 전체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막막하다. 레스토랑 주방에는 모든 주문이 적힌 티켓이 걸려 있다. 바리스타 앞에는 대기 중인 음료 스티커가 줄지어 있다. 택배 기사님은 배송 현황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한다. 보이는 일은 관리할 수 있다.
같은 맥락이라는 착각 "저녁 때 얘기하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7시를 생각했고, 상대는 9시를 생각했다. 2시간 동안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았다. 가장 흔한 착각: 모두가 나와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고 믿는 것. "간단한 수정"이라고 개발자에게 요청하면 3일 뒤에 답이 온다. 내 머릿속 '간단'은 30분이었는데, 개발자의 '
선민의식 외계인이 본 선민의식 외계인이 본 선민의식 케플러-442b에서 온 관찰자 보고서를 입수했다. 지구 방문 후 본성에 제출한 문서인데, 번역하면 대략 이렇다. "지구라는 행성의 생명체들은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총 8,000여 개 집단이 존재하는데, 그중 7,847개 집단이 자신들을 '신이 선택한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있다. 나머지 153개 집단은 '신은 없지만
AI가 검색을 죽일 거라던 사람들 구글 AI 검색 기능 사용자가 20억 명을 넘었다는 뉴스를 보며 문득 떠오른 건, 작년 이맘때 레딧에서 본 댓글이었다. "이제 구글 망했다. ChatGPT만 쓰면 되는데 누가 검색해?" 그런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AI가 답을 주는데도 사람들이 더 검색한다. 구글 발표로는 검색 인상이 49% 늘었다고 한다. AI가 "파리 여행 3박
안티피치, 혹은 정직한 거절권 Fay라는 회사 CEO가 면접에서 하는 말이 재밌다. "우리 회사에 오지 말아야 할 이유"를 먼저 늘어놓는다고 한다. 빠른 속도를 견디지 못한다면, 타이틀에 집착한다면, 편한 길만 찾는다면 오지 말라고. 보통 면접이라면 "성장하는 회사에서 함께할 인재를 찾습니다"로 시작한다. 뻔하다. 성장 안 하는 회사는 없고, 인재 싫어하는 회사도
미슐랭 스타보다 중요한 것 레스토랑 드라마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천재 셰프가 완벽한 요리로 세상을 정복하는 판타지, 아니면 지옥의 주방에서 고든 램지가 욕설을 퍼붓는 리얼리티. 그런데 The Bear는 둘 다 아니다. FX의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건 익히지 못한 양파처럼 날것 그대로의 주방이다. 배달 온 재료가 모자라고, 벤더는 돈을 재촉하고, 예약은 밀려있다. 주인공 카르멘(제레미
의견이라는 것 카페에서 친구 넷이 저녁 메뉴를 정하고 있었다. "뭐 먹을까?" 첫 번째는 "음... 글쎄, 한식도 좋고 양식도 좋고..." 하며 5분간 모든 음식을 나열했다. 두 번째는 "너희가 정해"라며 결정을 회피했다. 세 번째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생각해볼게"라고 했다. 마지막 한 명이 말했다. "
인터넷의 새로운 경매장 유튜브에서 "스마트폰 리뷰"를 검색하면 수만 개의 영상이 뜬다. 하지만 챗GPT(ChatGPT)에게 "새로운 구글 픽셀 폰 어때?"라고 물으면 하나의 답변만 나온다. 그 답변 뒤에는 보이지 않는 경매가 벌어진다. 200밀리초.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당신을 위한 광고 경매가 그 시간 안에 끝난다. 수십 개 광고주가 당신의 관심을
구글의 역설적 성공: 클릭은 줄고 돈은 늘었다 구글(Google)의 2분기 검색 수익이 542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2% 증가다. 그런데 같은 기간 클릭 수는 30% 감소했고, 사이트 트래픽도 50% 떨어졌다. 수학이 이상하다. AI 오버뷰(AI Overviews)가 범인이다. 이제 "김치찌개 맛집"을 검색하면 구글이 바로 답해준다. 클릭할 필요가 없다. 단순한 호기심은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우리가 정말 사는 건 커피일까 스타벅스에서 6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은 커피를 사는 게 아니다. "커피를 아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산다. 편의점 천원짜리 커피와 맛 차이를 구분 못 하면서도. 정체성 마케팅(Identity Marketing)이라는 게 있다. 브랜드가 고객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판다는 아이디어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에 올라탄 순간, 당신은 더
떨어지는 과일과 터지는 거품 요즘 게임 광고 보면 다 비슷하다. 앞부분 5초는 과일 자르기, 블록 맞추기, 뭔가 압축하기. 게임이랑 상관없는 OSV(Oddly Satisfying Videos)로 시작한다. 처음 한두 개 봤을 땐 신선했다. 근데 이제는 모든 게임사가 똑같이 한다. 마치 2000년대 초 모든 웹사이트에 플래시 인트로가 있던 것처럼. 광고계의 양떼 효과 마케팅 담당자들의 대화를 상상해본다:
경쟁의 본질: 싸우는 척하며 도망가기 경쟁 전략의 핵심은 세 가지 구조를 구분하는 것이다. 첫째, 시장 자체를 다르게 정의하기. 같은 제품을 파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다른 욕구를 충족시킨다. 커피를 파는 것 같지만 사실 시간을 파는 곳과 각성제를 파는 곳은 다른 사업이다. 둘째, 같은 시장이지만 다른 층위에서 놀기. 품질의 사다리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 싸구려와 명품은 경쟁하지 않는다.
죽은 문서와 산 문서의 차이 조엘 스폴스키(Joel Spolsky)가 2000년 10월에 쓴 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제목이 있다. "Specs Need To Stay Alive(스펙은 살아있어야 한다)." 24년 전 글이다. 아이폰이 나오기 7년 전, 페이스북이 생기기 4년 전, 에자일 선언문이 나오기 1년 전. 그런데 이 글은 여전히 소프트웨어 업계의 필독서로 꼽힌다. 스택오버플로우를 만든
자유라는 감옥 넷플릭스를 켜면 30분은 뭘 볼지 고민한다. 선택지가 10개였던 비디오 가게 시절엔 5분이면 충분했는데. 진짜 문제는 막연함이 아니다. 잠재적 손실의 크기를 모른다는 거다. 영화 하나 잘못 고르면? 2시간 날린다. 그런데 직업을 잘못 고르면? 전공을 잘못 고르면? 유튜브 채널 주제를 잘못 정하면? 손실의 끝을 알 수 없으니 모든 선택이 거대한 도박처럼 느껴진다.
과열된 서버와 강제 휴식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Claude와 대화하다가 갑자기 멈췄다. "Usage limit reached. Please try again later." 처음엔 짜증났다. 마감이 코앞인데 AI가 파업이라니.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미래의 노동 패턴 아닐까? 19세기 공장 노동자들은 기계가 고장나면 쉬었다. 21세기 지식 노동자들은 AI가 과열되면 쉰다. 차이점이 있다면, 옛날엔 기계가 우리를 위해
에딩턴 아리 애스터(Ari Aster)의 신작 <에딩턴(Eddington)>: 스마트폰이 총이 된 서부극 "스마트폰을 영화적으로 보이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악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죠." — 아리 애스터, IndieWire 인터뷰 <유전(Hereditary)>, <미드소마(Midsommar)>의 아리 애스터가 가장 무서운 소재를 들고 왔습니다. 2020년 5월의 미국입니다. 칸의 화제작, 한국은 언제? 2025년 5월 16일 칸 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에서 월드 프리미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