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보면 헤매고, 선을 보면 결정한다
당신이 문제를 못 푸는 이유는 멍청해서가 아니다. 시간축과 비용 없이 생각하고 있어서다.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스냅샷으로 본다. 정지된 사진 한 장. "이 주식 살까 말까?" "다이어트 할까 말까?" "이 사람 채용할까 말까?" 이렇게 물으면 답이 안 나온다. 왜냐하면 이건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이 빠진 질문은 질문이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렇다. "앞으로 5년 동안 이 주식은 어떻게 움직일까?" "6개월 동안 매일 1시간씩 운동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포기하고, 저녁 약속을 줄이면서까지 10kg을 뺄 가치가 있을까?" "이 사람은 1년 후 어떤 사람이 될까?"
차이가 보이는가? 전자는 점이고, 후자는 선이다. 전자는 양자택일이고, 후자는 교환이다. 세상은 점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 세상은 시퀀스다.
시퀀스로 생각하라
내가 본 최고의 투자자들은 가격표를 안 본다. 그들은 스토리를 본다. "이 회사의 매출이 지난 3년간 어떻게 변했나?" "다음 2년간 어떤 일들이 순서대로 일어나야 하나?" "각 단계에서 무엇이 무엇을 촉발하나?" 이게 시퀀스 사고다.
A가 B를 만들고, B가 C를 만들고, C가 D를 만든다. 낱개로 보면 A, B, C, D는 그냥 점들이다. 의미 없다. 하지만 시퀀스로 보면 A→B→C→D는 하나의 흐름이다. 인과관계가 보인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제품이 안 팔린다"는 하나의 점이다. 여기서 답이 안 나온다. 하지만 시퀀스로 펼치면 보인다. 광고를 본다 → 랜딩 페이지에 온다 → 가입을 한다 → 첫 사용을 한다 → 다시 온다 → 결제를 한다. 자, 이제 어디가 끊어졌는지 보인다. 광고는 보는데 랜딩 페이지에 안 온다면? 광고 문제다. 랜딩 페이지엔 오는데 가입을 안 한다면? 가입 플로우 문제다.
시퀀스로 펼치지 않으면 "왜 안 팔리지?"만 반복한다. 시퀀스로 펼치면 정확히 어디가 문제인지 보인다.
인과관계는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다르다. 상관관계는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A와 B가 함께 움직인다. 인과관계는 순서가 있는 것이다. A가 먼저 일어나고, 그래서 B가 일어난다. 인과관계를 찾고 싶으면 시간 순서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성공한 스타트업들을 보면 다들 좋은 엔지니어가 있다. 상관관계다. 하지만 좋은 엔지니어를 뽑으면 성공하는가? 아니다. 실제 순서는 이렇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 그래서 좋은 엔지니어가 합류한다 → 그래서 좋은 제품이 나온다 → 그래서 성공한다. 좋은 엔지니어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 중 하나다.
이걸 모르고 "좋은 엔지니어만 뽑으면 되겠네"라고 생각하면 망한다. 순서가 틀렸기 때문이다. 시간축으로 풀어야 인과관계가 보인다.
순환과 대세
시간축으로 보면 또 다른 게 보인다. 어떤 건 돌고 돌고, 어떤 건 한 방향으로만 간다. 경제는 순환한다. 호황 → 불황 → 호황 → 불황. 패턴이 반복된다. 하지만 기술은 순환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나온 후 피처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 방향이다.
이 차이를 모르면 큰일난다. 2000년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은 버블"이라고 생각했다. 순환이라고 본 거다. 곧 터지고 사라질 거라고. 틀렸다. 인터넷은 대세였다. 버블은 터졌지만 인터넷은 더 커졌다. 2021년에 많은 사람들이 "NFT는 대세"라고 생각했다. 비가역적이라고 본 거다. 계속 커질 거라고. 틀렸다. NFT는 순환이었다. 투기 사이클의 한 부분이었다.
구분하는 법은? 시간을 더 뒤로 돌려라. 100년 전에도 비슷한 게 있었나? 그럼 순환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인가? 그럼 대세일 가능성이 높다. 순환이라면 타이밍이 전부다. 언제 들어가고 언제 나올지. 대세라면 방향이 전부다. 얼마나 빨리 올라타는지.
양자택일이 아니라 교환이다
"다이어트 할까 말까?"는 질문이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거다. "6개월 동안 매일 아침 1시간 운동(총 180시간), 좋아하는 음식 포기(치킨, 피자, 술), 저녁 약속 80% 감소, 헬스장 비용 월 10만원(총 60만원). 이 비용을 내면서까지 10kg을 뺄까? 아니면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 시간과 돈으로 다른 걸 할까?"
이제 계산할 수 있다. 투입은 180시간 + 60만원 + 사회생활 감소 + 식욕 억제 스트레스. 산출은 10kg 감량 + 건강 개선 + 자신감.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시간축이다. 이게 6개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6개월차에 목표 달성, 체중 -10kg. 1년차엔 유지할까 요요일까? 5년차엔 여전히 관리 중일까 원점 복귀일까? "6개월 고생하면 끝"이 아니라 "평생 관리해야 함"이라는 시간축을 보면 판단이 달라진다.
모든 선택은 시간과 비용의 교환이다
"할까 말까"가 아니라 "구체적 시간동안 구체적 비용을 내면서 구체적 결과를 얻을까, 아니면 그 시간과 비용으로 다른 선택을 할까?"가 진짜 질문이다.
비용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라
"창업할까?"라고 물으면 막연한 꿈만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물으면 다르다. "앞으로 2년간 매달 300만원씩 저축 못 함(총 7,200만원), 주말 없음, 친구들 만나는 시간 80% 감소, 실패 확률 70%, 정신적 스트레스 극대화, 이력 공백으로 재취업 불리. 이 비용을 내면서까지 내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을 가치가 있나? 아니면 지금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그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할까?"
비용은 돈만이 아니다. 시간, 에너지, 관계, 기회비용, 정신적 안정, 사회적 평판. 이걸 다 나열하라. 그러면 "할까 말까"가 "이걸 내고 저걸 살까?"로 바뀐다.
"이직할까?"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질문은 "이직할까 말까?"다. 올바른 질문은 이거다. "3개월간 이력서 쓰고 면접 준비(주말 없음), 현 직장 몰입도 하락, 새 환경 적응 스트레스, 초반 6개월 성과 압박. 이 비용을 내면서 연봉 500만원 인상과 커리어 도약을 얻을까? 아니면 지금 회사에서 그 시간과 에너지로 승진을 노릴까?"
시퀀스로 펼치면 보인다. 현재는 안정적이지만 성장 정체. 3개월 후는 이직 준비로 피곤. 6개월 후는 새 회사, 낮은 위치에서 재시작. 1년 후는 적응 완료, 본격 성과. 2년 후는 이전보다 높은 위치 도달(성공 시) or 후회(실패 시). 각 단계의 비용과 리스크가 보인다.
점보다 선, 선보다 입체
여기까지가 대부분 사람들이 도달하는 지점이다. 시간축으로 본다. 시퀀스를 그린다. 비용을 나열한다. 이것만 해도 90%보다 앞서간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아직 부족하다.
선은 1차원이다. 앞뒤만 있다. 하지만 세상은 입체다. 당신이 앞으로 가는 동안 옆에서도 뭔가 일어난다. 위에서도 일어난다. 아래에서도 일어난다. 동시다발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창업을 결심했다. 시퀀스를 그렸다. 1년 차엔 제품 개발, 2년 차엔 시장 진입, 3년 차엔 성장. 완벽한 선이다. 하지만 그 사이 경쟁사가 5개 생긴다. 규제가 바뀐다. 시장 자체가 축소된다. 당신의 멘탈이 무너진다. 공동창업자가 나간다. 이게 입체다.
선으로 보면 자기 경로만 보인다
입체로 보면 모든 변수가 동시에 움직이는 게 보인다
입체로 보는 법은 이렇다. 내 계획을 시퀀스로 그린다. 그리고 묻는다. "이 기간 동안 시장은 어떻게 움직일까?" "경쟁자들은 뭘 할까?" "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변할까?" "나 자신은 어떻게 변할까?" 이 모든 선들이 동시에 움직인다. 때론 평행하게, 때론 교차하며, 때론 충돌하며.
당신이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6개월 계획을 세운다. 완벽하다. 하지만 3개월 차에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가 터진다. 야근이 시작된다. 운동할 시간이 사라진다. 스트레스로 폭식한다. 당신의 계획은 선이었지만, 인생은 입체였다.
입체보다 움직임
입체로 보면 변수들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왜냐하면 입체는 고정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각 변수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보이지만,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안 보인다.
움직임을 본다는 건 벡터를 본다는 거다. 속도와 방향. 가속도와 관성. 각 변수가 어디로 얼마나 빠르게 가고 있는지. 멈출 수 있는지 없는지.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 없는지.
경쟁사가 5개 있다는 게 입체다. 그 중 2개는 빠르게 성장 중이고, 2개는 정체 중이고, 1개는 망해가는 중이라는 게 움직임이다. 시장이 100억이라는 게 입체다. 그 시장이 연 30%씩 커지고 있다는 게 움직임이다.
당신이 지금 월 300만원 번다는 게 입체다. 매년 10%씩 오르고 있고, 5년 후엔 팀장이 될 가능성이 70%라는 게 움직임이다. 당신 배우자가 지금 당신을 지지한다는 게 입체다. 하지만 2년째 저축 못 하면 마음이 바뀔 거라는 게 움직임이다.
움직임을 보면 타이밍이 보인다. 지금 시장이 작아도 빠르게 커진다면 들어가야 한다. 지금 시장이 커도 축소 중이라면 나와야 한다. 경쟁사가 많아도 다들 느리면 기회다. 경쟁사가 적어도 한 놈이 빠르면 위험하다.
움직임보다 생애주기
하지만 움직임도 영원하지 않다. 모든 건 생애주기가 있다. 태어나고, 자라고, 정점을 찍고, 늙고, 죽는다. 기업도 그렇고, 시장도 그렇고, 기술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스타트업의 생애주기를 보자. 초기엔 모든 게 빠르다. 성장률 300%. 하지만 작다. 중기엔 성장률이 떨어진다. 100%, 50%, 30%. 하지만 덩치가 커진다. 후기엔 성장률이 10% 이하로 떨어진다. 하지만 안정적이다. 말기엔 성장이 멈춘다. 유지하거나 축소된다.
어느 단계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략이 다르다. 초기에 들어가면 리스크는 크지만 리턴도 크다. 중기에 들어가면 균형이다. 후기에 들어가면 안정적이지만 상승은 제한적이다. 말기에 들어가면 망한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시장은 2007년 태어났다. 2010년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0년대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지금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다? 늦었다. 생애주기가 끝나간다.
하지만 AI는 2022년 태어났다. 지금 초기다. 폭발적 성장 구간이다. 지금 들어가는 게 맞다. 생애주기상 시작 지점이다.
당신의 커리어도 생애주기가 있다. 20대엔 배우는 시기다. 성장이 빠르다. 30대엔 성과 내는 시기다. 커리어가 정점을 향해 간다. 40대엔 관리하는 시기다. 성장률은 둔화되지만 안정적이다. 50대 이후엔 유지 또는 은퇴 준비다.
지금 당신이 어느 단계인지 보라. 그리고 당신이 투자하려는 것이 어느 단계인지 보라. 생애주기가 안 맞으면 실패한다. 당신은 성장 단계인데 투자 대상이 쇠퇴 단계면? 안 맞다. 당신은 안정 단계인데 투자 대상이 초기 단계면? 리스크가 크다.
생애주기보다 계보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지막 층위가 있다. 계보다. 생애주기를 넘어선, 대를 이어가는 흐름.
한 기업이 망한다. 하지만 그 기업에서 나온 사람들이 새 기업을 만든다. PayPal이 망했다. 하지만 PayPal 마피아가 나왔다. Elon Musk는 Tesla와 SpaceX를 만들었다. Peter Thiel은 Palantir를 만들었다. Reid Hoffman은 LinkedIn을 만들었다. 한 기업의 죽음이 여러 기업의 탄생이 됐다. 이게 계보다.
한 기술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 기술의 원리는 다음 기술에 녹아든다. 진공관이 사라졌다. 하지만 트랜지스터가 나왔다. 트랜지스터의 원리로 반도체가 나왔다. 반도체의 원리로 집적회로가 나왔다. 각각은 생애주기를 가지지만, 계보는 이어진다.
당신의 삶도 계보다. 당신이 배운 것은 다음 세대로 간다. 당신이 쌓은 부는 자식에게 간다. 당신이 만든 조직은 후배에게 이어진다. 당신이 쓴 글은 독자의 생각에 영향을 준다. 당신 개인의 생애주기는 끝나지만, 당신이 만든 흐름은 계속된다.
계보로 보면 보인다. 지금 당신이 하는 선택이 단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당신 이전에 누가 무엇을 했고, 당신 이후에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 당신은 흐름의 한 지점이다. 그 흐름을 이해해야 당신의 위치가 보인다.
Warren Buffett은 Benjamin Graham의 제자다. Graham이 가치투자를 만들었다. Buffett이 그걸 발전시켰다. 이제 수많은 투자자들이 Buffett을 배운다. 계보다. Buffett 혼자 나온 게 아니다. 그는 계보의 한 지점이다.
Steve Jobs는 Xerox PARC에서 GUI를 봤다. 그걸 Mac에 넣었다. Microsoft가 그걸 베껴서 Windows를 만들었다. 이제 모든 컴퓨터가 GUI를 쓴다. 계보다. Jobs가 발명한 게 아니다. 그는 계보를 이어받아 다음으로 넘긴 사람이다.
결론: 차원을 높여라
점을 보면 헤맨다. "할까 말까?" 끝없이 반복한다.
선을 보면 결정한다. "이 시퀀스면 되겠네." 판단할 수 있다.
입체를 보면 대비한다. "이런 변수들이 있구나." 계획을 보완한다.
움직임을 보면 타이밍을 잡는다. "지금이 적기야." "아직 이르네." "이미 늦었어."
생애주기를 보면 전략을 세운다. "이 단계에선 이렇게 해야지." 흐름을 탄다.
계보를 보면 의미를 찾는다. "내 역할이 뭐지?" "누구에게서 받고 누구에게 줄까?"
차원이 높아질수록 결정은 명확해진다. 점에서 헤매지 말고, 선을 그려라. 선에 만족하지 말고, 입체로 봐라. 입체에 머물지 말고, 움직임을 봐라. 움직임만 보지 말고, 생애주기를 봐라. 생애주기에 갇히지 말고, 계보를 봐라.
당신의 차원이 당신의 결정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