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순간 죽고 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나'라고 생각하는 그 얼굴도, 실은 어제의 얼굴이 아니다. 피부 세포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메운다. 2-4주면 표피층이 완전히 바뀐다고 하니, 한 달 전 연인과 손 잡았던 그 손은 이미 없는 셈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게 우리 몸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다.
끊임없이 바뀌는 것들
우리 몸의 세포는 각자 정해진 수명이 있다.
적혈구는 120일 정도 살다가 비장에서 처리된다. 하루에 약 2000억 개가 새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것도 사실은 이 새로운 적혈구들 덕분이다.
장 내벽 세포는 더 극단적이다. 3-5일이면 교체된다. 매운 음식 먹고 속이 쓰렸던 위장도 일주일 후면 새 위장이다. 문자 그대로.
간세포는 좀 느긋하다. 300-500일 정도 산다. 그래서 간이 손상되어도 회복이 가능한 거다. 간의 70%를 잘라내도 몇 달이면 원래 크기로 돌아온다.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안 바뀌는 것들도 있다
모든 게 바뀌는 건 아니다.
뇌세포 대부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 특히 대뇌피질의 뉴런들은 평생 그대로다. 어릴 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면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 이유다. 그 기억을 담은 뉴런이 그대로 있으니까.
수정체의 중심부도 마찬가지다. 태아 때 만들어진 그대로 평생 간다. 나이 들면 노안이 오는 이유가 이거다. 수정체가 재생되지 않고 탄력을 잃어서.
치아의 에나멜질도 한 번 손상되면 끝이다. 재생 안 된다. 그래서 충치가 무서운 거다.
그래서 뭐가 '나'인가
철학적으로 묻자면,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
테세우스의 배 패러독스가 떠오른다. 배의 부품을 하나씩 교체하다 보면, 언제부터 그게 원래 배가 아닌 걸까?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Cell(2013)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 매일 약 3300억 개의 세포가 교체된다. 80-100일이면 체중 70kg 기준 약 30조 개의 세포가 새것으로 바뀐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나'다.
흉터는 그대로 있고, 기억도 남아있고, 성격도 크게 안 변한다. 세포는 바뀌어도 그 배열 패턴, 즉 정보는 유지된다. DNA라는 설계도를 따라 똑같이 재건축하니까.
이걸 아는 게 왜 중요한가
첫째, 우리 몸이 고정불변이 아니란 걸 알면 건강을 다르게 본다.
지금 아픈 몸도 몇 달 후엔 새 세포로 채워진다. 담배를 끊으면 폐 세포가 서서히 회복된다. 운동을 시작하면 근육 세포가 재구성된다. 변화가 가능한 이유다.
둘째, 노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세포 분열에는 한계가 있다. 텔로미어라는 염색체 끝부분이 분열할 때마다 짧아진다. 50-70번 정도 분열하면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다.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라고 한다.
결국 재생 속도가 손상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늙는다.
셋째, '나'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물질이 아니라 패턴이다. 강물처럼 계속 흐르면서도 형태를 유지하는.
그래서
우리 몸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우리가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 그 자체라는 걸 받아들이는 거다.
어제의 나는 이미 부분적으로 죽었고, 오늘의 나는 부분적으로 새로 태어났다.
매순간 죽으면서 동시에 태어나는 존재.
그게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