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사는 건 커피일까

우리가 정말 사는 건 커피일까
Coffee and Cigarettes [Jim Jarmusch • 2003]

스타벅스에서 6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은 커피를 사는 게 아니다. "커피를 아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산다. 편의점 천원짜리 커피와 맛 차이를 구분 못 하면서도.

정체성 마케팅(Identity Marketing)이라는 게 있다. 브랜드가 고객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판다는 아이디어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에 올라탄 순간, 당신은 더 이상 회사원이 아니라 "자유로운 라이더"가 된다는 식으로.

베로니카 로미(Veronica Romney)는 이걸 네 단계로 나눈다. 찾기, 증명하기, 이름 붙이기, 입히기. 그런데 이 과정을 자세히 보면 묘하다. 기업이 고객의 정체성을 "발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체성을 "제조"하고 있다.

레드 앤츠 팬츠(Red Ants Pants)라는 작업복 브랜드는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팔았다. 붉은 개미 암컷이 모든 일을 한다는 메타포로. 고객들은 바지가 아니라 "나는 열심히 일하는 강한 여성이다"라는 확신을 샀다.

문제는 이 정체성들이 대부분 기존에 없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플렉시 가족(Fluency Family)"도, "스매시 아미(Smash Army)"도 마케팅 팀이 회의실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고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새로 발명된 정체성을 "발견"했다고 착각한다.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루틴의 여왕" 영상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정체성 마케팅의 타겟이 되어 있다. 아침 6시 기상, 레몬물, 요가매트. 제품은 부차적이고, 정체성이 주요 상품이다.

그래서 요즘 브랜드들은 점점 더 종교 같아진다. 애플 신도, 테슬라 신도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정체성을 파는 브랜드의 고객은 고객이 아니라 신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