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배치되는 자들
명시지의 종말
AI가 모든 명시지를 장악했다. 검색하고, 조합하고, 최적화한다.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은 이제 기계가 더 잘한다. 맥킨지의 전체 보고서 데이터베이스를 3초 만에 검색한다. 100개 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조합한다. 5개 언어로 완벽한 문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완벽한 전략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완벽했는데 직원들이 반발한다. 논리는 탄탄했는데 고객이 외면한다. 최적해였는데 결과는 최악이다.
왜 그럴까. AI에게는 몸이 없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지식
폴라니(Michael Polanyi)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설명할 수 있는가. 반죽의 적절한 농도를 글로 쓸 수 있는가. 상대방 목소리에 담긴 불안을 데이터로 포착할 수 있는가.
이런 건 설명할 수 없다. 몸으로 느껴야 안다. 이게 암묵지(tacit knowledge)다. 숙련된 장인은 나무의 결을 보고 어느 방향으로 깎아야 할지 안다. 이걸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다. 그냥 안다. 손이 기억한다.
AI는 이 영역에 접근할 수 없다. 통계적 패턴은 처리하지만 재료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단단하다"는 단어의 빈도는 계산하지만 단단한 걸 만져본 적이 없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기호 접지 문제(Symbol Grounding Problem)"라고 부른다. 기호와 현실 사이의 단절.
박스 1: 기호 접지 문제
AI는 "고통"이라는 단어의 통계적 패턴은 안다. 하지만 아픈 적이 없다. "신뢰"의 정의는 암기했지만 배신당한 적이 없다. 기호는 처리하지만 그 기호가 현실에서 갖는 무게를 몸으로 느끼지 못한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지식이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지식은 신체와 세계가 만나는 접점에 있다. "나는 생각한다"보다 "나는 할 수 있다"가 먼저다.
컵을 잡을 때 우리는 거리와 각도를 계산하지 않는다. 몸이 공간을 이해하고 있다. 이게 운동 지향성(motor intentionality)이다. 숙련된 외과의는 계산하지 않고 메스를 움직인다. 베테랑 협상가는 분석 없이 타이밍을 잡는다. 이런 능력은 신체에 새겨진 수천 번의 시행착오에서 나온다.
AI는 이걸 흉내낼 수 없다. 몸이 없으니까.
팔란티어의 발견
그래서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필요하다. 아니, 더 필요하다. 누군가는 AI의 완벽한 설계를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팔란티어(Palantir)의 전진배치엔지니어(Forward Deployed Engineer, FDE)가 힌트를 준다. 팔란티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만든다. CIA, FBI, 군대가 쓴다. 소프트웨어는 거의 완벽하다.
그런데 팔란티어는 소프트웨어만 팔지 않는다. FDE를 함께 보낸다. 이들은 고객 현장에 직접 간다. 정보기관 벙커에, 군부대 작전실에, 제조 공장에. 거기서 몇 달, 때로는 몇 년을 보낸다.
왜 그럴까. 소프트웨어가 완벽하다면서.
완벽한 소프트웨어는 이론적 완벽함이다. 현실은 다르다. 30년 경력 정보 분석관에게는 자기만의 워크플로우가 있다. 데이터를 보는 순서, 패턴을 읽는 방식, 직관이 작동하는 타이밍. 이건 매뉴얼에 없다. UI 설계자도 모른다. 현장에 가서 옆에 앉아봐야 안다.
FDE는 현장에서 산다. 사용자 옆에 앉아 일하는 걸 관찰한다. 어떤 순간에 막히는지, 어떤 기능이 실제로 필요한지 본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고친다. 본사에 요청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직접 코드를 짠다.
한 사례가 있다. 군 작전 지휘관에게 팔란티어 시스템을 배치했다.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전장 데이터를 통합하고 최적의 전술을 제안했다. 완벽했다. 그런데 지휘관이 안 썼다.
FDE가 물었다. 왜요? 지휘관이 답했다. "이건 결과만 줘요. 내가 왜 이렇게 결정했는지 보여주지 않아요. 상부에 보고할 때 판단 근거를 설명해야 하는데."
소프트웨어 논리는 맞았다. 최적해를 제시하는 게 목적이니까. 하지만 현장 논리는 달랐다. 군대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 책임을 진다. 왜 이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블랙박스는 아무리 정확해도 쓸모없다.
FDE는 시스템을 수정했다. 모든 추론 단계를 시각화했다. 어떤 데이터가 어떻게 결합되어 이 결론에 도달했는지 보이게 했다. 지휘관은 그제야 시스템을 썼다. 효율은 조금 떨어졌다. 추가 인터페이스 때문에 응답 속도가 느려졌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되었다.
간극을 메우는 일
여기서 핵심을 볼 수 있다. 완벽한 설계와 복잡한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이 간극을 메우는 건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다. 현장에 가서, 사람 옆에 앉아서, 직접 보고 느껴야 한다.
암묵지는 전달될 수 없다. 같이 있어야 전염된다. 관찰하고, 모방하고, 반복해야 한다. 책으로 배울 수 없고 화상회의로도 안 된다. 현장에 있어야 한다.
팔란티어가 비싼 이유가 여기 있다.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비용이 아니다. FDE 비용이다. 이들은 엔지니어이면서 동시에 현장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코딩만으로는 안 된다. 상황을 읽고, 사람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이건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부딪혀야 생긴다. 10년 경력 분석관의 습관을 파악하려면 한두 달은 옆에 앉아 있어야 한다. 군 지휘관의 보고 체계를 이해하려면 작전실 분위기를 느껴야 한다. 공장 라인의 리듬을 알려면 교대 근무를 함께 서봐야 한다.
재밌는 건 팔란티어가 이들을 "엔지니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컨설턴트가 아니다. 엔지니어다. 이들은 실제로 만든다. 설명만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한다. 현장에서 직접 코드를 짜고,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시스템을 조정한다.
박스 2: 전진배치의 3단계
1단계: 관찰 - 현장에서 실제 사용자의 워크플로우 파악
2단계: 조정 - 이론적 설계를 현실의 맥락에 맞게 수정
3단계: 구현 - 그 자리에서 직접 코드를 짜고 시스템을 고침
새로운 인재상
이게 새로운 인재상이다.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AI가 더 많이 안다. 전략을 잘 짜는 사람도 아니다. AI가 더 잘 짠다. 필요한 건 AI의 출력을 현장에 착륙시키는 사람이다.
이론과 실천 사이를 왕복하는 사람. 코드도 짤 줄 알고 현장 언어도 하는 사람. 설계도도 읽고 진흙탕도 걷는 사람. 이들에게 이름이 필요하다.
"전진배치되는 자들"이라고 부르자. 전방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본사 책상이 아니라 현장으로. 추상이 아니라 구체로. 설계도가 아니라 진흙탕으로. 메를로-퐁티의 표현을 빌리면, "고공 비행의 사유"를 멈추고 땅에 발을 디디는 사람들이다.
드러커(Peter Drucker)가 1959년에 "지식 노동자(knowledge worker)"를 예언했다. 육체가 아니라 지식으로 일하는 사람들. 그의 예측은 맞았다. 하지만 이제 그 개념이 갈라진다. 지식 노동의 한쪽 절반(정보 처리)은 AI가 가져갔다.
남은 절반은 뭘까. 드러커도 강조했던 부분이다. "효율(efficiency)이 아니라 효과(effectiveness)."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하는 것. 올바른 일을 고르려면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맥락은 데이터로 포착되지 않는다. 현장에 가야 한다.
5년 후의 시장
5년 후에는 모든 산업에 이런 역할이 생긴다. AI가 완벽한 솔루션을 제시하면, 누군가는 그것을 현장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만 던져주고 "알아서 쓰세요"는 안 된다. 현실은 늘 예외투성이다. AI는 평균만 안다.
채용 시장이 바뀐다. 과거에는 명문대 출신을 뽑았다. 많이 아니까. 이제는 현장 경험을 본다. 부딪혀 봤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나요?"를 묻는다. PPT는 AI가 만든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의 판단이다.
교육이 달라진다. 암기는 사라진다. AI가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데 뭘 외우나. 대신 프로젝트가 늘어난다. 실패하고, 책임지고, 수정하는 경험. 이론을 몸으로 번역하는 훈련. 학위보다 포트폴리오가 중요해진다. 뭘 아느냐가 아니라 뭘 만들었느냐.
조직 구조도 재편된다. 본사 기획팀은 축소된다. AI가 전략을 짠다. 현장 실행팀은 강화된다. 착륙은 사람만 할 수 있으니까.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바뀐다. 정보 전달자에서 맥락 번역가로. 위의 지시를 아래로 내리는 게 아니라, 아래의 현실을 위로 올린다.
재밌는 현상이 하나 있다. AI가 발전할수록 전진배치되는 자들의 가치는 올라간다. 역설처럼 보이지만 논리는 명확하다. AI가 설계를 무료로 만든다. 설계의 가치는 떨어진다. 하지만 설계가 많아질수록 실행 능력은 희소해진다.
공급은 늘고 실행은 부족하다. 병목은 제작 단계로 이동한다. 과거에는 아이디어가 희소했다. 좋은 전략, 혁신적 컨셉, 참신한 기획. 이제는 아이디어가 넘친다. AI가 하루에 수백 개씩 뽑아낸다.
병목은 "어떤 아이디어를 선택할 것인가"와 "그것을 어떻게 실제로 만들 것인가"로 이동했다. 둘 다 암묵지의 영역이다. 둘 다 몸이 필요하다. 둘 다 현장 경험에서 나온다.
지도와 영토
임금 구조도 바뀐다. 과거에는 MBA 출신이 높은 연봉을 받았다. 이제는 10년 경력 현장 전문가가 더 받는다. 지식은 복제 가능하지만 경험은 복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I는 전략을 카피할 수 있지만 10년간 손으로 익힌 감각은 카피할 수 없다.
스타트업 투자 기준도 바뀐다. 과거에는 "팀이 좋은 학교 출신인가"를 봤다. 이제는 "팀이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가"를 본다. 아이디어는 피벗할 수 있지만 빌딩 능력은 전이 가능하다. 한 번 만들어본 사람은 다른 것도 만들 수 있다.
5년 후를 상상해보자. AI는 더 똑똑해진다. GPT-7이든 뭐든 나온다. 모든 명시지를 완벽하게 처리한다. 그때 가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전진배치되는 자들이다. 현장에 가는 사람들. AI의 지도를 들고 실제 영토를 걷는 사람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아무리 정확한 지도도 실제로 걸어보기 전에는 쓸모가 없다. 길이 막혀 있을 수 있다. 다리가 무너졌을 수 있다. 지도에 없던 샛길이 있을 수 있다. 이건 걸어봐야 안다.
메를로-퐁티는 "고공 비행의 사유(pensée de survol)"를 비판했다. 하늘 위에서 세계를 내려다보며 전지적으로 이해한다는 환상. 우리는 세계 밖에 있지 않다. 세계 안에 박혀 있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 특정한 몸을 가지고.
이 제약이 한계가 아니라 지식의 조건이다. AI는 고공 비행한다. 전 세계 데이터를 내려다본다. 하지만 착륙할 수 없다. 몸이 없으니까.
전진배치되는 자들은 착륙한다. 땅에 발을 디딘다. 진흙을 밟고, 넘어지고, 일어선다. 그 과정에서 지도에 없던 걸 발견한다. 신체 없는 지능은 공허하다. 미래는 서버가 아니라 현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