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중요한 것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AI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바꿀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만 있을 뿐이다.
나는 지난 몇 달간 AI와 비즈니스, 그리고 삶에 대한 수백 개의 자료를 읽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건 단순했다. 중요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그 변화의 본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는 점이었다.
블랙박스가 열리고 있다
OpenAI와 Anthropic은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AI가 시를 쓸 때 마지막 단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운율을 맞추려면 결말을 염두에 두고 전체 문장을 구성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패턴 매칭이 아니다. 계획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이제 그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희소 변환기'라는 새로운 모델은 특정 개념이 특정 뉴런과 연결되는 방식을 추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블랙박스가 투명해지고 있다.
이게 왜 중요한가? 금융과 의료 같은 규제 산업에서 AI를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AI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X, Y, Z입니다"라고 설명할 수 있다면, 법적 책임 문제가 해결된다. 시장이 열린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 대가는 물리적이다.
AI의 투명성이 높아질수록 규제 산업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 설명 가능한 AI 시장이 폭발할 것이다.
진짜 병목은 전력이다
Llama 3.1 모델이 텍스트 하나를 생성하는 데 6,706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2024년 미국 AI 서버들이 쓴 전력은 53~76 TWh다. 미국 전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3분의 1이다.
OpenAI와 Microsoft는 'Stargate' 프로젝트에 5,000억 달러를 투자한다. 데이터센터 10개를 짓겠다는 계획이다. Anthropic도 500억 달러를 쏟아붓는다. Morgan Stanley는 경고한다. 2028년까지 미국에서 최대 20%의 전력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AI는 점점 똑똑해지지만, 그걸 돌리려면 점점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결국 AI 경쟁은 전력 확보 경쟁이 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을 가진 지역이 이긴다. 중국은 이미 신재생에너지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에너지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다.
이건 단순한 인프라 문제가 아니다. 지정학의 문제다. AI 팩토리를 어디에 지을지는 향후 수십 년간 글로벌 권력 지형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효율성에만 집중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걸 돌릴 전기를 누가 확보하느냐일 수 있다.
AGI 논쟁이 가리는 것들
사람들은 AGI가 언제 올지 토론한다. 하지만 정작 AI가 지금 당장 일으키고 있는 문제는 외면한다.
그린란드어를 보자. AI 번역 때문에 망가졌다. 품질 낮은 번역이 위키피디아에 쏟아지면서 언어 자체가 훼손됐다. 그린란드어 위키피디아는 폐쇄됐다. 취약 언어들이 AI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작가들은 생계를 걱정한다. AI는 글쓰기의 막막함을 덜어주는 도구지만, 동시에 인간 고유의 창작을 위협한다. 창의적 도구이자 경쟁자다.
AGI는 추상적이고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언어 파괴와 창작자의 위기는 지금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먼 미래에 자원을 쏟으면서 눈앞의 문제를 놓치고 있다. 이건 전형적인 함정이다. 극적이고 추상적인 미래 시나리오가 지루하고 구체적인 현재 문제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끈다.
AGI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실질적 AI 문제에서 자원을 빼앗는다. 언어 파괴와 창작자 위기는 지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콘텐츠 홍수 속 신뢰의 가치
AI가 콘텐츠 생성 비용을 제로로 만들었다. 결과는? 인터넷이 평범한 콘텐츠로 넘쳐난다. 신뢰가 무너졌다. 검색 트래픽이 떨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역설적이다. 더 많은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아니라, 더 진짜 같은 걸 만드는 것이다. '파운더 레터'가 효과적인 이유다. 창업자의 실제 경험과 목소리를 담은 글은 AI가 복제할 수 없다. 기계적 콘텐츠와 차별화된다. 신뢰 자산을 쌓는다.
동시에 마케터의 역할이 바뀐다. 과거에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SEO 전문가, 소셜미디어 전문가, 콘텐츠 전문가. 하지만 이제는 AI를 활용해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더 가치 있다. 'Gen Marketer'의 시대다. 좁고 깊게 파는 대신, 넓게 보고 AI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이긴다.
생각해보면 이건 자연스러운 진화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도구를 다루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진다. 과거에는 포토샵 전문가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Canva로 누구나 디자인한다. AI 시대에는 마케팅의 모든 영역이 이렇게 된다.
컴파운딩의 힘
스타트업 성장에는 만능 열쇠가 없다. 초기에는 웨비나와 'Powered By' 브랜딩이 효과적이다. Typeform과 Airtable이 이렇게 성장했다. 성장 단계에서는 제휴 마케팅과 SEO가 중요해진다. Stripe과 Zapier가 증명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컴파운딩이다. 최상위 스타트업들을 보면 초기 성장률은 평범했다.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벌어졌다. 이탈률을 1% 줄이고, ARPA를 조금씩 높이고, 핵심 지표를 꾸준히 개선했다. 작은 개선들이 복리처럼 쌓였다. 결국 격차가 벌어졌다.
폭발적 성장은 '성장 해킹'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지루한 일에서 나온다. 사람들은 극적인 성공 스토리를 좋아한다. 어떤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하루아침에 성공했다는 식의.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개선의 축적이다.
이게 어려운 이유는 명확하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이탈률 1% 개선은 섹시하지 않다. 투자자에게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12개월 동안 매달 1%씩 개선하면 결과는 극적으로 달라진다.
고객 집착의 함정
Netflix와 BlackBerry를 비교해보자. BlackBerry는 기존 고객에게 집착했다. 키보드 사용자들의 요구를 완벽히 들어줬다. 터치스크린을 무시했다. 망했다.
Netflix는 달랐다. 2003년 DVD 구독자들의 요구만 들었다면 스트리밍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다. Reed Hastings는 고객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미래의 필요를 읽었다.
이게 '아인슈텔룽 효과'다. 전문성이 오히려 새로운 해결책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현재 고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혁신을 가로막는다. 진짜 고객 중심은 현재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게 아니다. 미래의 고객이 필요로 할 가치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현재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과 미래 고객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다르다. 때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시장과 거품 사이
Michael Burry는 시장에서 철수했다. "때로는,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Nvidia 시가총액은 4.5조 달러다. 독일 GDP와 맞먹는다. 상위 10개 기술 기업이 전체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한다. 버블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S&P 500은 최근 고점 대비 4% 밖에 안 떨어졌다. 월스트리트 EPS 추정치는 오히려 올라간다. 광범위한 붕괴 조짐은 없다.
진실은 중간 어딘가에 있다. AI 관련주는 과대평가됐을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전체가 무너지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집중 리스크 관리다. 포트폴리오가 AI 주식에 과도하게 쏠려 있다면 조절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 자체에서 나갈 필요는 없다. 조정은 우량 자산을 사는 기회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점이다. 전부 사거나 전부 팔거나. 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대개 중간 어딘가에 있다.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기회를 포착하는 것. 지루하지만 효과적이다.
ARR의 종말
클라우드 시대의 핵심 지표가 흔들린다. ARR, 연간 반복 매출이다. 문제는 간단하다. 진짜 ARR과 가짜 ARR을 구분해야 한다. 연간 계약 기반의 예측 가능한 매출은 믿을 만하다. 하지만 변동성 큰 사용량 기반 매출은 다르다.
AI 제품은 대부분 실험 단계다. 고객들이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이탈률이 높다. 이걸 '반복' 매출로 보는 건 위험하다.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ERR, Experimental Runrate Revenue 같은.
투자자와 CFO는 매출의 질을 봐야 한다. 양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계약 기반 매출을 보유한 기업에 프리미엄을 줘야 한다. 이건 단순한 회계 문제가 아니다. 기업 가치 평가의 근본적인 재조정이다.
AI 시대에는 매출 자체보다 그 매출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가 중요해진다. 고객이 실험하고 있는 건지, 진짜로 의존하고 있는 건지. 이 차이가 밸류에이션을 결정한다.
행동이 먼저다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생존 본능 때문이다. 과도한 생각은 이 본능을 자극해서 행동을 마비시킨다. 해결책? 그냥 하면 된다. 영감을 받았을 때 즉시 움직여라. 실행을 통해 배워라.
행동 대리권이 중요하다. 사회적 순응에서 벗어나라. 외부의 허락을 구하지 마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반복 실험하라. 실패는 학습 과정이다.
'바나나를 잡으려다 물벼락 맞은 원숭이' 우화가 있다. 한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으려고 하면 물벼락을 맞는다. 다른 원숭이들이 이걸 본다. 나중에는 물벼락 장치를 제거해도 원숭이들은 바나나를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왜 안 되는지도 모른 채.
우리도 마찬가지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에 갇힌다. 이 조건화를 인식하는 게 첫걸음이다. '왜?'라고 질문하라. 자신만의 규칙을 실험하라.
진짜 자유는 무질서가 아니다. 규율이 만드는 안정된 기반 위에서 자발성이 꽃핀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오히려 창의적인 실험을 더 많이 한다. 기본이 안정되어 있으니까.
생각 다음에 행동하는 게 아니다. 행동 다음에 학습하고 개선한다.
결론
AI 시대에 중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다. 기술이 만드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블랙박스가 투명해지면 규제 산업이 열린다. 하지만 전력이 병목이 된다. 마케팅은 양에서 신뢰로 이동한다. 스타트업은 폭발적 성장이 아니라 컴파운딩으로 이긴다. 고객 집착은 때로 함정이다. 시장은 거품과 기회 사이에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행동이다. 생각만 하지 마라. 그냥 하면 된다. 작은 개선을 쌓아라. 지속적으로 반복하라.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당신이 참여하느냐 마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