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사람들이 만드는 비만 치료제 시장
아이폰의 첫 10년 매출을 뛰어넘을 시장, 바로 주사 한 대로 살을 빼는 비만 치료제 이야기입니다. GLP-1이라는 이 약은 이미 미국인 50명 중 1명이 사용하고 있죠. 그런데 시장의 90%를 장악한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의 주가는 왜 흔들리는 걸까요? 시장은 왜 이 '기적의 약'을 의심하기 시작했을까요?

아이폰의 첫 10년 매출을 두 배로 뛰어넘을 시장이 있다. 스타벅스도, 테슬라도 아닌, 주사기 하나로 살을 빼는 약 이야기다. GLP-1이라는 이름의 이 약은 지난 6년 만에 미국인 50명 중 1명이 맞고 있는 '현상'이 됐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와 일라이 릴리(Eli Lilly). 이 두 회사가 전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의 90%를 쥐고 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주가는 각각 430%, 640% 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주가가 빠지고 있다. 노보는 50%, 일라이는 15% 떨어졌다.
시장은 왜 이 '기적의 약'을 의심하기 시작했을까?
배고픔의 해킹
GLP-1은 원래 우리 몸에 있는 호르몬이다. 음식이 장에 도착하면 분비되어 "배부르다"는 신호를 뇌에 보낸다. GLP-1 약물은 이 호르몬을 흉내 낸다. 몸을 속이는 것이다.
효과는 놀랍다. 72주 동안 체중의 21%가 빠진다. 10명 중 8명이 체중의 10% 이상을 감량한다. 레딧(Reddit)의 오젬픽 서브레딧에는 극적인 변신 사진들이 넘쳐난다.
부작용? 메스꺼움, 구토, 설사. 그런데 이게 부작용인지 효과인지 애매하다. 너무 많이 안 먹게 되어서 단백질 보충제를 따로 먹어야 할 정도라니.
영원한 구독 모델
가장 잔인한 진실은 이거다: 약을 끊으면 살이 다시 찐다.
갑상선약이나 당뇨약처럼, 한 번 시작하면 평생 맞아야 한다. 월 900-1,300달러짜리 구독 서비스인 셈이다. 2030년까지 누적 매출 4,700억 달러가 예상되는 이유다.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는 2035년까지 미국인의 9%가 이 약을 맞을 거라고 예측한다.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조차 2030년 시장 규모를 950억 달러로 본다.
듀오폴리의 균열
그런데 왜 주가는 떨어질까?
노보 노디스크의 문제:
- 미국에서 위고비(Wegovy) 처방이 정체됐다. 공급을 늘렸는데도.
- 신약 카그리세마(CagriSema)의 임상 결과가 실망스러웠다. 25% 감량 목표, 실제로는 22.7%.
- 일라이 릴리에게 시장을 뺏기고 있다는 불안.
일라이 릴리의 고민:
- CVS가 젭바운드(Zepbound) 보험 적용을 빼버렸다.
- 복제약국들과 경쟁하느라 온라인에서 월 499달러에 팔기 시작했다. 정가보다 훨씬 싸게.
공급망이라는 병목
약 만드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다단계 공정에, 자본 집약적이고, 느리다. 수요가 폭발하니 자동 주사기 펜조차 부족했다.
이 틈을 노려 복제약국들이 치고 들어왔다. 월 199달러에 판다. 정품의 1/5 가격이다. FDA가 '부족 예외' 조항으로 허용했던 건데, 이제 공급이 안정되면서 단속이 시작됐다.
다음 5년의 풍경
- 시장은 계속 큰다: 비만과 당뇨병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 경쟁자는 아직 멀다: 암젠(Amgen)과 바이킹(Viking Therapeutics)이 3상 시험 중이지만, 2027년이나 되어야 결과가 나온다.
- 먹는 약이 온다: 노보는 이미 FDA에 신청했고, 일라이도 곧 따라간다. 주사 공포증 환자들의 시장이 열린다.
- 복제약은 사라진다: 공급 부족이 해결되면서 합법적 근거가 사라진다.
포트폴리오라는 농담
투자자들은 이미 바구니를 짜고 있다:
- 핵심 제약사 88% (노보 45%, 일라이 35%, 암젠&바이킹 8%)
- 공급망 기업 7% (주사기, 유리병 만드는 회사들)
- 유통업체 5% (맥케슨 같은)
"떠오르는 물결은 모든 배를 띄운다"는 오래된 격언을 믿는 것이다.
아이러니의 각주
세상에서 가장 마른 나라 중 하나인 덴마크 회사(노보 노디스크)가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을 지배한다. 미국 중서부의 제약회사(일라이 릴리)와 함께.
더 큰 아이러니는 이거다.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진화시킨 '배고픔'이라는 생존 메커니즘을, 이제는 돈을 주고 꺼버린다. 월 1,000달러에.
가장 큰 아이러니? 이 약들이 너무 잘 듣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안 먹어서 근육까지 빠진다. 그래서 단백질 보충제 시장도 함께 큰다.
시장은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한다. 하지만 350억 달러 시장이 10년 안에 3배가 된다는 단순한 산수 앞에서, 일시적인 주가 하락은 각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거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는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