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이라는 미신

확률이라는 미신

"이번 캠페인 성공 확률이 80%입니다."

대기업 회의실에서 누군가 자신 있게 말한다. PPT에는 그럴듯한 그래프가 가득하다. 그런데 정작 그 80%가 뭔지는 아무도 모른다. 10번 중 8번? 100번 중 80번? 아니면 그냥 "꽤 높다"는 뜻?

확률은 참 묘하다. 내일 해가 뜰 확률은 100%라고 확신하지만, 오늘 저녁 넷플릭스에서 뭘 볼지 고를 확률은?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의 마케팅 예측이 떠다닌다.

시장은 사람이고, 사람은 변덕스럽다

마케팅이 불확실한 건 당연하다. 시장은 사람들의 집합이니까. 매일 수십억 개의 신호가 오간다. 유튜브 댓글 하나가 매출을 바꾸고, 인스타 릴스 하나가 브랜드 이미지를 뒤집는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착각한다. 빅데이터만 있으면, AI만 도입하면, 전문가만 영입하면 미래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거라고. 마치 일기예보처럼 정확하게.

진실은? 인간 행동을 다룬 708개 연구 중 강한 상관관계(0.5 이상)를 보인 건 고작 3%였다. 나머지 97%는 "글쎄, 아마도?"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왜 우리는 확실함에 집착할까

어릴 때부터 단순한 인과관계를 배웠다.

문 열어둠 + 개가 밖을 좋아함 = 개가 도망감

명쾌하다. 하지만 마케팅은?

신제품 출시 + 광고 집행 + 인플루언서 협찬 + 경쟁사 실수 + 갑작스런 트렌드 + 알 수 없는 요인들 = ???

문제는 우리 뇌가 이런 복잡함을 싫어한다는 거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단순한 스토리를 만든다. "광고 때문에 성공했어" "가격이 문제였어" 같은.

통계학자의 사고법

통계학자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확실함을 포기하고 확률로 세상을 본다.

첫째, 모른다는 걸 인정한다
데이터를 아무리 모아도, AI를 아무리 돌려도 모르는 건 모른다. 레딧에서 갑자기 밈이 될지, 어떤 연예인이 우연히 제품을 들고 찍힐지는 예측 불가능이다.

둘째, 여러 곳에서 신호를 찾는다
유튜브 조회수만 보지 말고 댓글도 보고, 인스타 좋아요만 보지 말고 공유 수도 본다. 오프라인 매장 반응도 확인한다. 퍼즐 조각을 많이 모을수록 그림이 선명해진다.

셋째, 작게 여러 번 베팅한다
100억 원짜리 대박 캠페인 하나보다 10억 원짜리 실험 10개가 낫다. 특히 뭐가 먹힐지 모를 때는.

넷째, 애매한 걸 숫자로 만든다
"브랜드 이미지가 좋아졌다"보다 "선호도가 3.2에서 4.1로 올랐다"가 낫다. 완벽하진 않아도 토론의 기준은 된다.

불확실함과 친구 되기

한 스타트업 대표가 말했다. "처음엔 모든 걸 예측하려 했어요. 지금은 70% 확신이면 움직입니다. 나머지 30%는 운이죠."

그게 현실이다. 마케팅은 과학이 아니라 정원 가꾸기에 가깝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지만, 날씨는 통제할 수 없다.

확률적 사고는 겸손함이다. 내가 모든 걸 알 수 없다는 인정.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예측하고 준비한다는 의지.

다음에 누군가 "성공 확률이 80%"라고 하면 물어보자.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대답을 못 한다면? 그 사람도 사실은 모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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