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한다는 거짓말

실패를 사랑한다는 거짓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다. 그럼 성공의 아버지는 누구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실패만으로는 성공이 태어나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게 더 필요하다.

스타트업 씬에서는 실패를 자랑하듯 말하는 게 유행이다. "세 번 망했어요", "투자금 10억 날렸어요". 마치 실패 횟수가 명함에 들어갈 스펙인 것처럼. 하지만 가만 들어보면 그들이 말하는 '실패'는 대부분 '시도'다. 진짜 실패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실패의 인플레이션

언제부턴가 실패의 의미가 희석됐다. 프레젠테이션이 조금 어색했어도 '실패했다'고 하고, 목표치를 살짝 못 채워도 '실패했다'고 한다. 진짜 실패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런 건 실패가 아니라 '아쉬움'이라는 걸.

진짜 실패는 이런 거다:

  • 3년 준비한 사업이 6개월 만에 문 닫기
  • 신뢰했던 동료의 배신으로 모든 걸 잃기
  • 자신만만했던 도전이 참담한 결과로 끝나기

이런 실패 앞에서 "실패는 자산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그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회고라는 사치

실패를 회고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 때가 있다. 정말로 크게 실패했을 때는 회고할 여유가 없다. 당장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하고, 빚을 갚아야 하고, 무너진 일상을 복구해야 한다.

AAR이니 회고니 하는 건 어느 정도 안전망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 실패를 '경험'으로 포장할 수 있는 여유. 이게 없으면 실패는 그냥 실패일 뿐이다.

성장의 신화

성장도 마찬가지다. "매일 1%씩 성장하기", "컴포트존을 벗어나라" 같은 구호들. 하지만 진짜 성장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성장은 선형적이지 않다. 계단식도 아니다. 오히려 롤러코스터에 가깝다. 올라갔다가 곤두박질치고, 멈춰 있다가 갑자기 튀어 오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정체기다.

누군가 말했듯, 성장은 "박살나고 재조립되는 과정"이다. 뼈가 부러졌다가 다시 붙으면서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솔직해지는 용기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패를 미화하는 게 아니라 솔직해지는 것이다.

"실패가 싫다" - 당연하다. 누가 좋아하겠나.

"성장이 힘들다" - 맞다. 쉬웠으면 모두가 했겠지.

"회고가 귀찮다" - 그렇다.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는 건 괴롭다.

이런 솔직함에서 시작해야 진짜 변화가 가능하다. 실패를 사랑하는 척하면서 실은 두려워하는 것보다, 두렵다고 인정하고 그래도 해보는 게 낫다.

실패 미니멀리즘

실패를 최소화하고 싶다는 건 건강한 욕구다. 무모한 도전보다 계산된 위험이 낫고, 큰 실패보다 작은 실수들이 낫다.

중요한 건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배우기 위해 꼭 큰 실패를 겪을 필요는 없다. 남의 실패를 보고 배워도 되고, 작은 실수에서 큰 교훈을 얻어도 된다.

진짜와 가짜 구분하기

실패든 성장이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가짜 실패: "이번 분기 목표를 5% 못 채웠어"

진짜 실패: "회사가 망해서 직원들 월급을 못 줬어"

가짜 성장: "오늘도 책 한 장 읽었다"

진짜 성장: "예전의 나라면 못했을 일을 해냈다"

구분법은 간단하다. 가슴이 아프면 진짜고, 입만 아프면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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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실패를 두려워하느라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실패가 싫다고 솔직히 말하면서도 도전하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