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병 치료제: 잡스처럼 살면 잡스가 된다는 착각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우리는 뭘 배워야 할까. "Stay Hungry, Stay Foolish." 이 문장을 액자에 넣고 책상 앞에 붙이면 뭐가 달라지나. 아무것도 안 달라진다. 그건 잡스가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만들어낸 언어다. 포장이다. 그 말을 읊조리면서 뭔가 깨달은 것 같은 기분에 취하는 건 가장 쉽고, 가장 쓸모없는 일이다.
표면만 핥으면 XX 같은 인사이트가 나온다. 성장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무대 위에서 했던 말, 검은 터틀넥을 입고 프레젠테이션하던 모습, 그게 잡스의 전부가 아니다. 그건 철저하게 연출된 겉이다. 진짜를 보려면 이면을 봐야 한다. 그가 실제로 뭘 했는지. 무슨 대가를 치렀는지. 뭘 포기했는지.
잡스는 자신의 성취를 위해 어렵고 불편하게 살았다. 직원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다. 가족을 방치했다. 자기 딸 리사의 존재를 부정했다. DNA 검사 결과가 나와도 "내 딸 아니다"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협력사를 쥐어짰다. 그가 만든 제품은 아름다웠지만, 그 과정은 아름답지 않았다.
잡스의 겉과 속은 완전히 달랐다. 무대 위에서는 세상을 바꾸자고 외쳤다. 무대 아래에서는 냉혹한 사업가였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게 필수적이었다는 거다. 세상을 바꾸는 제품을 만들려면 타협하지 않아야 했다. 타협하지 않으려면 사람들과 충돌해야 했다. 충돌하면 미움을 샀다. 그걸 감당했다.
나는 잡스의 삶에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잡스처럼 되고 싶지 않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아니다. 배움과 모방은 다르다. 잡스가 치른 비용을 이해하는 것과, 그 비용을 내가 치르겠다고 결심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잡스는 결과가 있었다. 애플이 있었다. 아이폰이 있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런데 당신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가?
이게 핵심이다. 우리가 잡스를 볼 때 빠뜨리는 가장 큰 변수다. 잡스는 성공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안다. 하지만 현대 인류 수십억 명 중에서 잡스와 같은 태도를 가졌고, 잡스처럼 살았고, 잡스만큼 시도했지만 성과도 유명세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수없이 많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그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가족을 희생하고, 관계를 망가뜨리고, 건강을 갈아넣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들이다.
잡스를 제대로 보려면 이 확률을 같이 봐야 한다. 잡스처럼 살면 잡스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잡스처럼 살아도 대부분은 잡스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남는다.
진짜 배워야 할 건 명언이 아니다. 그가 치른 비용이다. 그가 포기한 것들이다. 그리고 결과 없이 그 비용만 치르게 될 확률이다.
나는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이 사람 천재다"라는 감상에서 멈추지 않는다. 천재 맞다. 그래서 뭐. 천재라는 타이틀 뒤에는 비용이 있다. 철학이 있다. 포기가 있다. 그리고 생존자 편향이 있다. 그걸 같이 보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
잡스가 일반인보다 행복했을까. 아마 아닐 거다. 불행에 더 가까웠을 거다. 그는 끊임없이 부족함을 느꼈고,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원했고, 끊임없이 현실에 불만족했다. 그게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평화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운이 좋았다. 그 불행이 결과로 보상받았으니까.
표면만 보는 사람은 잡스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면까지 본 사람은 묻는다. 결과 없이도 그 삶을 감당할 수 있는가.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잡스에게서 진짜 뭔가를 배울 수 있다.
표면만 핥지 마라. 이면을 파라. 확률을 계산하라. 그래야 진짜 배울 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