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라는 안락함

"나는 애초에 기대를 안 해서 실망도 안 해."
요즘 이런 말이 인생 철학처럼 떠돈다. 카페에서, 술자리에서, 심지어 링크드인 프로필에서도. 아무것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성숙함의 증표가 된 시대. 루스벨트가 말한 "cold and timid souls"가 오히려 현명한 사람으로 포장되고 있다.
인스타 릴스를 보면 더 재밌다. "남의 일에 감정 소모하지 마세요", "기대하면 상처받아요", "혼자가 편해요" 같은 문구들이 감성 배경음악과 함께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댓글은 "맞아요 저도 이제 쿨해졌어요"로 도배된다.
쿨함의 정체는 뭘까. 회사 프로젝트가 망해도 "뭐 그럴 줄 알았지", 친구가 성공해도 "언젠간 다 부질없어",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굳이?" 한 마디로 정리. 이 얼마나 편안한 포지션인가. 실패할 위험도, 상처받을 가능성도, 먼지 뒤집어쓸 일도 없다.
하지만 가만 보면 이상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난 쿨해"를 외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말한다. 레딧에서 긴 글로 왜 자기가 관심 없는지 설명하고, 유튜브 댓글로 왜 이게 별로인지 분석한다. 무관심을 증명하려는 관심, 초연함을 보여주려는 노력.
더 아이러니한 건 이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콘텐츠가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거다. 넷플릭스에서 <나는 솔로> 보면서 "저 사람들 왜 저렇게 애쓰냐"고 하고, 스타트업 다큐 보면서 "다 거품이야"라고 한다. 경기장의 선수를 보면서 소파에 누워 과자 먹는 관객의 우월감.
"great enthusiasms"이나 "great devotions"은 촌스러운 것이 됐다. 뭔가에 진심인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아직도 순수하네"라며 측은해한다. 열정? 그거 회사가 노동 착취할 때 쓰는 단어 아니냐고. 헌신? 호구 되는 지름길이라고.
심지어 실패마저도 냉소의 먹잇감이다. 누군가 사업에 실패하면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연애에 실패하면 "요즘 누가 진지하게 연애해". 마치 자신은 애초에 시도조차 안 한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듯이.
그런데 말이다. 정말 차갑고 소심한 영혼이 되는 게 그렇게 멋있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핫한' 무언가를 찾아다닐까? 왜 '열정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몰래 끌릴까? 왜 밤에 혼자 있을 때 '나도 뭔가 해볼까?'라는 생각이 스칠까?
냉소주의의 가장 큰 매력은 안전함이다. 비판은 하되 대안은 없고, 평가는 하되 참여는 없다. 실패할 일도 없지만 성공할 일도 없다. 그저 "난 다 알고 있었어"라는 말만 반복하면 된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진짜 용기는 '안 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뭔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말하기. 실패할 걸 알면서도 도전하기.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마음 열기. 촌스럽다는 소리 들을 걸 알면서도 열정적이기.
"victory나 defeat를 모르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그저 살아있지 않은 것일까?
쿨한 척하느라 놓친 뜨거운 순간들이 아깝다. 하지만 이런 말 하는 나도 촌스러워 보일까 봐 여기서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