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는 관계다 — 매일 사랑할 필요 없다

자기애를 강박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사랑해야 해.” “나를 먼저 챙겨야 해.” “나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해.”

이 문장들은 옳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 문장들은 자기애를 ‘의무’로 만들기 때문이다. 의무가 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건 규칙이다.

자기애는 관계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그렇듯, 나와의 관계도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나를 좋아한다. 어떤 날은 나를 견디기 힘들다. 이게 정상이다.


자기애 산업의 탄생

자기애는 이제 하나의 산업이 됐다.

자기계발서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코칭 프로그램은 “나와의 관계 회복”을 판다. 명상 앱은 “자기 연민”을 구독료로 포장한다.

이들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반복한다.
“당신은 당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메시지가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것이다.
“지금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

Box 1:
자기애 산업은 결핍을 만든다.
당신이 이미 충분하다고 말하면, 아무도 돈을 내지 않는다.

자기애를 상품으로 만들려면, 먼저 당신에게 자기애가 부족하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은 그걸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산다. 책을 사고, 강의를 듣고, 구독을 한다.

자기애는 이제 KPI가 됐다. 측정 가능한 목표가 됐다. “오늘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관계는 원래 오락가락한다

나는 친구와 사이가 좋다. 하지만 가끔 그 친구가 싫을 때가 있다.

그 친구의 말투가 짜증 날 때가 있다. 그 친구의 선택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친구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가끔 부모님이 답답할 때가 있다.

부모님의 간섭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부모님의 가치관이 낡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부모님을 사랑한다.

나와의 관계도 똑같다.

어떤 날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떤 날은 나를 한심하게 느낀다. 어떤 날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날은 내가 형편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문제가 아니다. 이건 정상이다.

관계는 원래 오락가락한다. 감정은 원래 변한다. 나를 매일 사랑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장기적으로 나와의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자기애 강박의 증상

자기애 강박에 걸린 사람들은 특정한 패턴을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그들은 자기애를 못 느끼는 걸 또 다른 실패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애를 숙제처럼 여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나를 사랑해야지”라고 다짐한다. 저녁에 “오늘도 나를 사랑하지 못했네”라고 자책한다.

그들은 자기애를 성과처럼 측정한다. “나는 지난주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있나?” “내 자존감 점수는 몇 점일까?”

Box 2:
자기애를 의무로 만드는 순간,
그건 자기애가 아니라 자기감시다.

자기애는 느껴지는 것이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난다.


나쁜 날도 괜찮다

나는 가끔 나를 싫어한다.

내가 한 선택이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한 말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내가 못한 일들이 답답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자기계발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당신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충분하지 않다. 나는 지금 형편없다.

그리고 그게 괜찮다.

나쁜 날이 있어도 괜찮다. 나를 싫어하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 나와의 관계가 나쁠 때가 있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상태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걸 아는 것이다. 관계는 변한다. 감정은 흐른다. 내일은 또 다르다.


마케터들이 파는 것

마케터들은 자기애를 판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파는 건 자기애가 아니다.

그들이 파는 건 영구적인 자기애라는 환상이다.

“이 책을 읽으면 당신은 평생 당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들으면 당신은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방법을 쓰면 당신의 자존감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자기애는 영구적이지 않다. 자존감은 고정되지 않는다. 관계는 변한다. 나와의 관계도 변한다.

마케터들은 이 사실을 숨긴다. 왜냐하면 진실을 말하면 아무도 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의 관계도 매일 좋을 순 없습니다. 가끔 나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정상입니다.”

이 문장은 팔리지 않는다.


자기애의 진짜 의미

자기애는 나를 매일 사랑하는 게 아니다.

자기애는 나쁜 날에도 나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나를 실망시킨 날에도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날에도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친구와 싸운 날, 우리는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기다린다.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회복된다는 걸 안다.

부모님과 의견이 충돌한 날, 우리는 부모님과 연을 끊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거리를 둔다. 나중에 다시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걸 안다.

나와의 관계도 똑같다.

나를 싫어하는 날, 나를 버릴 필요가 없다. 나를 실망시킨 날, 나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나를 미워하는 날, 나와의 관계를 끊을 필요가 없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관계는 다시 좋아진다.


자기애는 일관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자기애 산업은 일관성을 판다.

“매일 나를 사랑하세요.” “항상 나를 우선시하세요.” “절대 흔들리지 마세요.”

하지만 일관성은 불가능하다. 감정은 일관되지 않는다. 관계는 일관되지 않는다. 인간은 일관되지 않는다.

진짜 자기애는 지속성이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날도 나를 싫어하는 날도 나를 버리지 않는 것.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나와 함께 가는 것.

이게 관계다. 이게 사랑이다. 이게 자기애다.


자기애를 강박으로 만들지 마라.

나를 매일 사랑할 필요는 없다. 나쁜 날도 괜찮다. 나를 싫어하는 날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날들을 견디고, 내일을 기다리고,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게 진짜 자기애다.​​​​​​​​​​​​​​​​

Read more

전진배치되는 자들

전진배치되는 자들

명시지의 종말 AI가 모든 명시지를 장악했다. 검색하고, 조합하고, 최적화한다.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은 이제 기계가 더 잘한다. 맥킨지의 전체 보고서 데이터베이스를 3초 만에 검색한다. 100개 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조합한다. 5개 언어로 완벽한 문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완벽한 전략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데이터는 완벽했는데 직원들이 반발한다. 논리는 탄탄했는데 고객이

도파민에 대한 '여전한' 오해(제발)

도파민에 대한 '여전한' 오해(제발)

사람들은 도파민을 행복 호르몬이라 부른다. 맛있는 걸 먹을 때, 좋아하는 영상을 볼 때, SNS에서 좋아요를 받을 때 도파민이 뿜어져 나와 우리를 기쁘게 만든다고 믿는다. 마치 뇌가 보상으로 뿌려주는 마법의 가루처럼. 하지만 이건 틀렸다. 완전히. 현상: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당신이 새벽 3시까지 쇼츠를 보고 있을 때, 당신은 행복한가? 아니다. 표정은 무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