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아웃소싱(해독제 동봉)

넷플릭스를 켠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섹션을 본다. 세 번째 추천작을 클릭한다.
이게 내 선택일까, 알고리즘의 선택일까?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인간이 기억을 외부에 맡겨왔다고 했다.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서 책, 사진, 그리고 지금은 클라우드까지.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게 된 건 전화번호부가 나온 이후고, 길을 외우지 않게 된 건 네비게이션이 나온 이후다.
그런데 이제는 기억을 넘어 선택까지 외부에 맡긴다.
알고리즘이 아는 나
유튜브가 추천한 영상을 본다. 인스타그램이 보여준 릴스를 넘긴다. 스포티파이가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듣는다. 배민이 추천한 맛집에서 시킨다.
"오늘 뭐 볼까"가 "오늘 뭐 추천됐지"로 바뀐 지 오래다.
실제로 넷플릭스 시청의 80%가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진다. 유튜브 시청 시간의 70%가 추천 영상이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검색해서 보는 건 30%도 안 된다는 얘기다.
선택 피로의 역설
음식 관련 결정만 하루에 200개가 넘는다. 뭘 먹을지, 얼마나 먹을지, 언제 먹을지. 거기에 뭘 입을지, 어떤 길로 갈지, 넷플릭스에서 뭘 볼지까지 더하면 정신이 아득하다.
그래서 알고리즘이 편하다. 선택의 부담을 덜어준다. 스티브 잡스가 매일 같은 옷을 입은 이유도 비슷하다. 쓸데없는 선택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고.
문제는 우리가 중요하지 않은 선택만 맡기는 게 아니라는 거다.
판단력의 퇴화
카페에서 주변을 보면 재밌는 장면이 펼쳐진다. 커플이 데이트 중인데 각자 폰을 본다. 뭘 보냐고? 틱톡이다. 가끔 서로 폰을 보여주며 웃는다.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한 재미를 공유하는 거다.
대화 주제마저 알고리즘이 정한다.
유튜브를 한 시간 봤다. 처음 본 영상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추천 영상을 따라 흘러갔을 뿐이다.
스크롤을 멈추고 생각해본다. 내가 정말 보고 싶었던 건 뭐였지?
나는 정말 이걸 좋아하는가
"맞춤 추천"이라는 말이 웃기다. 내가 과거에 본 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을 거라는 전제다.
하지만 인간은 변한다.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어 한다. 알고리즘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과거의 취향에 가둔다.
한 번 요리 영상을 봤더니 계속 요리 영상만 뜬다. 한 번 고양이 영상을 봤더니 고양이 지옥이다. 탈출하려면? 알고리즘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일부러 다른 영상을 찾아봐야 한다.
주객전도다.
선택의 외주화 시대
스티글레르가 경고한 건 이거다. 기억을 외부에 맡기니 기억력이 퇴화하듯, 선택을 외부에 맡기면 판단력이 퇴화한다.
이미 시작됐다. "뭐 먹을까" 대신 "배민 켜봐". "뭐 볼까" 대신 "넷플릭스 추천에 뭐 있나". "어디 갈까" 대신 "인스타에서 핫한 곳".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를 알고리즘에게 양도했다.
해독제는 깊이다
모르겠다면 선택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지도, 외주화하지도 마라.
대신 새로운 정보의 양을 통제하라. 매일 다른 영화 대신 좋은 영화 하나를 골라 여러 번 본다. 수십 권의 신간 대신 읽을 만한 책 하나를 깊이 읽는다.
반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고르는 게 핵심이다.
처음엔 줄거리를 본다. 두 번째는 연출을 본다. 세 번째는 대사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는다. 열 번째쯤 되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된다.
이게 진짜 새로움이다. 예측된 방향 안에서 우러나오는, 깊이에서 오는 새로움. 매번 다른 자극을 쫓는 것보다 훨씬 풍부하다.
알고리즘은 이걸 이해 못 한다. 넓이만 알지 깊이는 모른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새롭게만 외친다.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정보의 속도를 늦추고, 선택의 폭을 좁히고, 대신 깊이를 늘린다.
그게 선택의 주도권을 되찾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