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본스, 여기 문제가 좀.

제본스, 여기 문제가 좀.

AI가 똑똑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한다. 이상한 일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편해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가 일어나고 있다.

1865년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가 이미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기관의 효율을 높이자 석탄 소비가 줄어들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증기기관이 경제적이 되자 모든 산업이 이걸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영국의 석탄 소비량은 폭증했다. 효율이 높아지면 절약하는 게 아니라, 더 싸게 더 많이 쓴다. 이게 제본스의 역설이다.

AI도 마찬가지다. GPT가 글을 잘 쓸수록, 우리는 더 많은 글을 쓴다. 코딩이 쉬워질수록, 더 많은 코드를 생산한다. Box의 CEO 아론 레비(Aaron Levie)는 이렇게 말했다. "AI 토큰 비용이 떨어지면, 이전에는 비용 문제로 시도조차 못했던 수천 개의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이다." 지능의 가격이 내려가면 지능의 총소비량은 올라간다. 우리는 AI를 써서 사람을 줄이는 게 아니라, AI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확장한다.

데이터 센터의 전력 소비는 2026년까지 두 배가 된다. GPU는 더 빨리 업그레이드되고, 전자 폐기물은 급증한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구글(Google)의 물 소비량은 20~34% 늘었다. 냉각에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효율성이 환경을 구하는 게 아니다. 효율성은 수요를 폭발시킨다.

"효율성 향상은 절약이 아니라 수요 확장의 신호다. 더 싸면 더 많이 쓴다."

그런데 노동은 다르게 작동한다. AI가 일을 대신하면 사람이 필요 없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노동의 종류가 바뀐다. 이게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다. AI는 계산과 분석은 잘하지만, 인간에게 쉬운 감각 판단이나 미묘한 의사결정은 못한다. 그래서 단순 작업은 자동화되지만, 이걸 감독하고 설계하는 고숙련 노동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간다.

1970년대 이후 소프트웨어가 발달하자 마케팅 직군은 50년간 5배 늘었다. 기술이 일을 줄인 게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일을 만들었다. 2025년 1분기 AI 관련 일자리는 25.2% 증가했다. AI를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는 18%의 급여 프리미엄이 붙는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작업들이 이제는 가능해졌고, 기업은 그걸 하기 위해 사람을 고용한다. 모든 계약서를 법률 검토하고, 모든 고객에게 초개인화 마케팅을 하고,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AI가 비용을 낮추면, 우리는 그 여유로 더 많은 일을 벌인다.

하지만 여기 함정이 있다. 신입은 설 자리가 없다. 스탠퍼드(Stanford) 연구에 따르면, 22~25세 초기 경력 엔지니어 고용은 13% 감소했다. 반면 시니어 레벨은 안정적이거나 증가했다. AI는 교과서로 배울 수 있는 형식지(Codified Knowledge)를 처리한다. 과거에는 신입이 이런 단순 업무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는데, 이제 AI가 그걸 대체한다. 신입이 경력을 쌓을 사다리가 사라진 것이다.

빅테크 신규 채용 중 갓 졸업한 인재 비중은 2023년 대비 25% 감소해서 7%밖에 안 된다. 맥킨지(McKinsey)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2%가 AI로 인해 내년에 인력 규모가 줄어들 거라고 답했다. 증가 예상은 13%였다. 미국 경제 전반에서 현재 업무 시간의 30%가 2030년까지 자동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노동 시장이 양극화되고 있다. 초급 레벨은 사라지고, 고숙련 시니어는 귀해진다. 중산층 사무직이 공동화된다. 생산성 향상의 수익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으로 간다. AI를 소유한 쪽이 이긴다. 지난 40년간 기술 수익의 대부분은 자본으로 흘러갔고, 노동 소득 분배율은 떨어졌다.

"AI는 일의 총량을 늘리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는 줄인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사람들은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한다. MZ세대의 '갓생' 트렌드가 그렇다. 물 마시기, 공부 인증, 루틴 체크. 거시 경제는 불안하고 AI는 직업을 위협하는데, 최소한 자기 일상은 관리할 수 있다는 심리다. 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더 미세한 성취에 몰입하게 만든다. 한편에서는 FIRE족이 늘어난다. 노동 소득의 가치가 떨어지니 극단적으로 절약하고 투자해서 빨리 은퇴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제본스의 역설과 모라벡의 역설은 같은 이야기를 한다. 기술이 효율적일수록 우리는 더 많이 쓰고, 더 복잡하게 일한다. 다만 그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자원은 더 소모되고, 일은 더 늘어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좁아진다. AI는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더 바쁘게 만든다. 단지 그 바쁨에 참여할 자격을 얻기가 점점 어려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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