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처럼 생각하는 법 (당신도 할 수 있다)

이 글은 Psyche.co에 게재된 Ivar Fahsing의 "How to think like a detective"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드라마 속 형사들은 대부분 천재다. 범인이 남긴 머리카락 한 올로 사건을 해결하고, 커피잔에 묻은 립스틱 자국만 봐도 범인의 심리를 꿰뚫는다.
근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바르 파싱(Ivar Fahsing)은 노르웨이 경찰대학 교수다. 30년간 강력사건을 수사했다. 그가 Psyche에 쓴 가이드에서 밝힌 핵심은 이거다: 탐정의 사고법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거라는 것.
우리 뇌는 성급하다
처음 만난 사람을 떠올려보자. 1초도 안 돼서 판단이 끝난다. '착해 보인다' '재수 없다' '믿을만하다'.
파싱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를 인용한다. 'WYSIATI' -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는 인지 편향이다.
편의점에서 계산하는 알바생이 무뚝뚝했다고 치자. 우리 뇌는 즉시 결론을 내린다. "성격이 안 좋은 사람이구나."
하지만 실제로는? 그날따라 몸이 아팠을 수도 있고, 방금 매니저한테 혼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모른다. 그런데 안다고 착각한다.
형사들이 다른 점
파싱이 신입 시절 관찰한 베테랑 형사들의 특징이 흥미롭다.
그들은 조용했다.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았다. "범인은 분명 이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형사는 드라마에만 있다. 진짜 베테랑들은 계속 물었다. "정말 그럴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파싱의 표현을 빌리면, "결정을 안 하는 게 최고의 결정"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문제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건 중요하다.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바로 자물쇠를 바꾸지 않듯이.
ABC 원칙
파싱이 소개하는 형사 수사 교본의 핵심 원칙:
- Assume nothing (아무것도 가정하지 마라)
- Believe nothing (아무것도 믿지 마라)
- Challenge everything (모든 걸 의심하라)
거창해 보이지만 일상에서도 쓸 수 있다.
팀장이 갑자기 차갑게 대한다고 치자.
- 일반인: "내가 뭘 잘못했나? 날 싫어하나보다"
- ABC 적용: "오늘따라 왜 그럴까? 다른 이유가 있을까? 나한테만 그런가?"
가능한 설명을 모두 적어라
셜록 홈즈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불가능한 것을 제거하고 나면,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아도 남은 것이 진실이다."
파싱이 지적하는 재미있는 사실: 홈즈가 실제로 쓴 건 연역법이 아니라 '가추법(abductive reasoning)'이었다. 의사가 진단할 때 쓰는 방법이다. 증상을 보고 가장 그럴듯한 병을 찾는 것.
열이 나고 기침을 한다 → 감기일 수도, 독감일 수도, 코로나일 수도 있다.
좋은 의사는 첫 번째 떠오른 진단에 만족하지 않는다. 여러 가능성을 따져본다.
주토피아로 배우는 수사 기법
파싱이 든 흥미로운 예시 -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가상 사례:
시청 구내식당에서 라이언하트 시장이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다. 옆에는 피 묻은 촛대. 지문을 확인하니 양 비서관 벨웨더의 것이다.
첫 반응은? "벨웨더가 때렸구나."
하지만 파싱의 방법대로 가능성을 나열해보면:
- 벨웨더가 일부러 공격했다
- 실수로 떨어뜨렸다
- 시장이 먼저 공격해서 정당방위했다
- 다른 사람이 공격한 후 벨웨더가 촛대를 옮겼다
- 이전에 다친 시장을 도우려다 피가 묻었다
- 누군가 벨웨더를 모함하려 조작했다
각 가능성마다 확인할 사항이 다르다. CCTV를 봐야 할 수도, 목격자를 찾아야 할 수도, 의료 기록을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6-C 접근법
파싱과 동료들이 개발한 체계적 수사 방법:
- Collect - 정보를 수집하라
- Check - 사실을 확인하라
- Connect - 점들을 연결하라
- Construct - 가설을 세워라
- Consider - 필요한 정보를 고려하라
- Consult - 신뢰할 사람과 상의하라
마인드맵을 그려라
파싱이 제안하는 정보 정리법:
가능한 설명 → | 폭행 | 정당방위 | 사고 | 목격자 | 이전 사건 | 조작 |
---|---|---|---|---|---|---|
동기가 있나? | + | - | - | - | - | + |
반응이 어땠나? | + | - | - | - | - | + |
목격자 증언은? | ||||||
CCTV는? | ||||||
의료 기록은? |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표시한다.
- (+) 이 설명을 지지함
- (-) 이 설명에 반대됨
- N/A 관련 없음
마이너스가 많이 붙은 가설부터 제거해간다.
악마의 대변인을 구하라
파싱이 강조하는 또 다른 포인트: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셜록 홈즈에게 왓슨이 있었던 이유다. 왓슨은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그게 맞아?" "다른 가능성은?" 하고 묻는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 딴지 거는 사람. 놓친 걸 짚어주는 사람.
면접관이라면 동료에게 부탁하라. "내가 이 지원자 맘에 들어하는데, 한번 반대 의견 좀 내봐."
세상이 복잡해졌다
파싱이 인용한 경영학자 괴크체 사르굿과 리타 맥그래스의 연구(2011)가 흥미롭다. 30년 전과 비교해 우리가 다루는 복잡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
예전엔 도시 같은 큰 시스템만 복잡했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도, 온라인 쇼핑 하나도 수십 개 시스템이 얽혀있다.
AI가 해결책이 될지, 더 큰 문제가 될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하나다. 복잡한 세상일수록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
연습이 필요하다
파싱의 조언: 탐정 사고법은 근육과 같다. 써야 는다.
일상에서 연습할 수 있다:
- 왜 신제품이 실패했을까?
- 왜 우리 아이가 수학을 싫어할까?
- 왜 휴대폰이 느려졌을까?
바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가능성을 나열해보라. 정보를 모아라. 가설을 검증하라.
마지막으로
파싱의 결론이 현실적이다.
형사처럼 생각한다고 항상 답을 찾는 건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다. 모르는 것도 많고, 영원히 못 알아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방법을 쓰면 최소한 성급한 실수는 줄일 수 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 집을 살 때, 직원을 뽑을 때, 이직을 고민할 때 - 탐정의 사고법이 도움이 된다.
뇌는 계속 속삭일 거다. "네 첫인상이 맞아."
그때 한 발짝 물러서라. 그리고 물어라.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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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ow to think like a detective" by Ivar Fahsing, Psyche.co
이바르 파싱(Ivar Fahsing)은 노르웨이 경찰대학 형사수사학과 교수다. 30년간 노르웨이 최악의 강력사건들을 수사했으며, 현재는 경찰과 수사관들에게 복잡한 상황에서 안전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2016년 박사 논문 "The Making of an Expert Detective: Thinking and Deciding in Criminal Investigations"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