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풀지 마라
대부분의 성공 공식은 이렇게 시작한다. 문제를 찾아라. 해결책을 만들어라. 효율적으로 실행하라. 이 공식은 끝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끝났는데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
야마구치 슈는 일본의 컨설턴트다. 보스턴 컨설팅에서 일했다. 세스 고딘은 미국의 마케터다. 야후에 회사를 매각했고, 마케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대륙에서, 서로 다른 언어로,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컨설턴트가 논리의 한계를 말하고, 마케터가 마케팅의 종말을 선언했다. 대신 둘 다 예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풀어야 할 문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불편함이 넘쳤다. 결핍이 넘쳤다. 그래서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돈을 벌었다. 더 빠르게, 더 싸게, 더 편리하게. 그게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마존에서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도착한다. 냉장고도 세탁기도 스마트폰도 있다. 야마구치 슈는 이걸 "문제의 희소화"라고 불렀다. 풀어야 할 문제 자체가 귀해졌다는 뜻이다.
동시에 문제 해결 능력은 넘쳐난다. MBA 출신이 넘쳐나고, 컨설턴트가 넘쳐나고, 데이터 분석가가 넘쳐난다.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누구나 같은 답에 도달한다. 같은 데이터, 같은 프레임워크, 같은 결론. 야마구치 슈는 이걸 "정답의 코모디티화"라고 불렀다. 정답이 범용품이 됐다는 뜻이다. 차별화가 안 된다. 결국 가격 경쟁이 되고, 소모전이 되고, 승자독식이 된다.
세스 고딘은 같은 현상을 "공장"이라는 은유로 설명한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동안, 성공 공식은 명확했다. 지시를 따라라. 규칙을 지켜라. 톱니바퀴가 되어라. 아담 스미스가 발견했듯이, 복잡한 제품도 단순한 단계로 쪼개면 비숙련공 열 명이 숙련공 한 명보다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공장은 순종적이고, 값싸고, 교체 가능한 노동자를 원했다. 학교는 그런 노동자를 찍어냈다. 200년 동안 잘 작동했다. 하지만 지금은 작동하지 않는다. 지시를 따르는 일은 더 싼 노동력이 대신한다. 규칙을 지키는 일은 알고리즘이 더 잘한다. 당신이 교체 가능하다면, 왜 굳이 당신을 쓰겠는가.
그렇다면 답은 뭔가. 야마구치 슈는 "쓸모"에서 "의미"로 전환하라고 한다. 세스 고딘은 "거래"에서 "선물"로 전환하라고 한다. 이름은 다르지만 가리키는 건 같다.
도요타와 페라리를 비교해 보자. 도요타는 쓸모 있다. 연비가 좋고, 고장이 안 나고, 가격이 합리적이다. 페라리는 정반대다. 연비가 나쁘고, 유지비가 비싸고, 실용성은 제로다. 그런데 사람들은 페라리를 산다. 왜 그런가. 거기엔 스토리가 있다. 정체성이 있다. 가치관이 있다. 그건 도요타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만들어도 복사할 수 없다. 쓸모는 숫자로 잴 수 있다. 그래서 비교 가능하고, 경쟁이 되고, 승자독식이 된다. 하지만 의미는 측정 불가능하다. 내가 왜 이걸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좋다. 그래서 경쟁이 안 된다.
세스 고딘은 이걸 "선물 경제"라고 부른다. 거래와 선물의 차이가 뭔가. 거래는 등가 교환이다. 내가 시간을 주면 너는 돈을 준다. 주고받는 게 명확하다. 그래서 관계가 끝난다. 하지만 선물은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가 시작된다. 연결이 생긴다. 신뢰가 쌓인다. 세스 고딘은 말한다. "선물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 거래는 거리를 만들고, 선물은 연결을 만든다.
린치핀의 법칙
세스 고딘은 "린치핀"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조직에서 빠지면 안 되는 사람이다. 린치핀이 하는 일은 매뉴얼에 없다. 규정에 없다. 하지만 그게 모든 차이를 만든다. 스타벅스 바리스타 중 어떤 사람은 규정대로 커피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손님 이름을 기억하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한마디 건넨다. 첫 번째는 교체 가능하다. 두 번째는 대체 불가능하다. 세스 고딘은 두 번째가 하는 일을 "감정 노동"이라고 부른다. 측정 불가능한 가치. 그게 린치핀을 린치핀으로 만든다.
의미는 어디서 오는가. 선물은 어떻게 만드는가. 야마구치 슈는 "미의식"이라고 답한다. 세스 고딘은 "예술"이라고 답한다.
논리만 쓰면 같은 답이 나온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 같은 프레임워크를 적용하면, 모두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차별화가 불가능하다. 그럼 뭐가 남는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판단이다. 직관이다. 야마구치 슈가 말하는 미의식은 예쁜 걸 알아보는 눈이 아니다. "진·선·미"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능력이다. 뭐가 진짜인지, 뭐가 옳은지, 뭐가 아름다운지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힘이다. 세스 고딘이 말하는 예술도 그림 그리기가 아니다. "용기와 통찰과 창의성으로 현상을 바꾸는 행위"다. 바리스타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회계사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매체가 아니라 태도다.
그런데 왜 이게 드문가. 세스 고딘은 "도마뱀 뇌"를 지목한다. 편도체다. 5만 년 전에는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위험을 감지하고, 튀는 행동을 막았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다. 도마뱀 뇌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한다.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한다. 실패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선택을 한다. 규칙을 따른다. 톱니바퀴가 된다. 학교는 이걸 강화한다. 야마구치 슈와 세스 고딘 모두 교육 시스템을 비판한다. 같은 연필을 쓰게 하고, 같은 책을 읽게 하고, 조용히 앉아서 듣게 한다. 선 밖으로 그림을 그리면 벌을 받는다. 세스 고딘의 표현으로, 학교 앞 간판에는 이렇게 써야 한다. "우리는 미래의 공장 노동자를 훈련시킵니다."
두려움을 나침반으로
세스 고딘의 조언은 단순하다. 도마뱀 뇌가 두려워하는 것, 저항이 느껴지는 바로 그 방향으로 가라. 두려움을 나침반으로 써라. 단, 거꾸로. 야마구치 슈는 비슷하게 "대량 시도"를 강조한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만 해서는 모른다. 해봐야 안다. 안 되면 다시 해봐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커리어 80%는 우연에서 비롯됐다. 치밀한 계획보다 타석의 수가 중요하다.
효율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문제를 푸는 능력은 이제 AI가 더 잘한다. 인간에게 남는 건 의미를 만드는 일이다. 선물을 주는 일이다. 연결을 만드는 일이다. 야마구치 슈의 표현으로는 "미의식"이고, 세스 고딘의 표현으로는 "예술"이다.
컨설턴트 출신이 컨설팅의 한계를 말한다. 마케터 출신이 마케팅의 종말을 선언한다. 둘 다 자기가 익숙한 세계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그렸다. 그 세계에서는 효율적인 사람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교체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살아남는다. 역설적이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마지막 경쟁력이다. 철학이 무기가 되고, 미의식이 자산이 되고, 선물이 전략이 된다. 측정할 수 없는 것. 복사할 수 없는 것. 그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