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화의 조건

1976년 몬트리올에서 동독은 금메달 40개로 2위를 했다.
소련이 49개로 1위, 미국이 34개로 3위였다. 인구 1600만 명의 동독이 6100만 명인 서독(금메달 10개, 4위)보다 4배 많은 금메달을 딴 것이다.
특히 여성 수영에서 압도적이었다. 개인전 금메달 11개 중 9개를 휩쓸었다. 미국 수영 선수 웬디 보글리올리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들은 매우 강하고 빨랐어요. 우리는 그들을 기계 같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기계였다.
동독은 196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재능 있는 어린이들을 발굴했다. 유치원에서부터 스포츠 센터를 통해 체계적으로 스카우트했고, 가장 유망한 선수들을 집중 훈련시켰다.
과학적 접근도 달랐다. 미국에서는 코치들이 군사 훈련이나 의료 재활 논문에서 운동 조건을 추정해야 했지만, 동독 코치들은 연구진과 직접 협력하며 실제 올림픽 참가 선수들을 연구했다.
라이프치히의 동독 체육대학과 연구소는 엘리트 스포츠 과학의 중심지였다. 소련의 마트베예프가 개발한 '주기화 훈련법'도 적극 도입했다. 개별 운동부터 4년 올림픽 계획까지 포괄하는 이 방법론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쓰인다.
여기에 도핑이 더해졌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3위를 한 후, 1974년부터 '국가 계획 연구 주제 14.25' 프로그램을 통해 튜리나볼 같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체계적으로 투여했다. 특히 여성 선수들에게 남성 호르몬을 주입해 근육량을 늘렸다.
하지만 도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시스템 자체가 달랐다.
동독에게 올림픽은 생존의 문제였다. 경제적으로는 서독에 완패했고, 베를린 장벽으로 자국민을 가둬야 할 정도로 체제 경쟁에서 밀렸다. 스포츠만이 '사회주의 우월성'을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였다.
그래서 모든 걸 걸었다. 국가 예산, 과학자, 의사, 코치를 총동원해서 완전히 새로운 훈련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결과는 인구 대비 역사상 최고의 올림픽 메달 획득률이었다.
고도화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경쟁의 강도. 생존을 건 제로섬 게임이어야 한다. 동독에게 올림픽 패배는 체제 정당성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했다.
둘째, 승리의 보상. 이겼을 때 얻는 게 엄청나야 한다. 동독에게 금메달은 단순한 스포츠 성과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승리였다.
셋째, 패배의 비용. 졌을 때 잃는 것과 상대가 얻는 게 명확해야 한다. 동독이 올림픽에서 지면 서독이 체제 우월성을 증명하게 되고, 동독은 사회주의의 실패를 인정하는 셈이 된다. 승부가 분명해야 올인할 수 있다.
전쟁에서 군사기술이 가장 빨리 발전하는 이유도 같다. 레이더, GPS, 인터넷 모두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서 나왔다.
그럼 우리는 이걸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우리가 쓰는 틀과 지표와 관점은 어디서 나온 건가? 소가 풀뜯어먹는 한가한 곳에서 취미로 만들어낸 건가, 아니면 인간과 국가가 생명을 걸고 만든 건가?
나는 도구를 고를 때 후자를 우선적으로 고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