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는 무덤이다

회사가 망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돈이 떨어지거나, 관료주의에 잠식당하거나.

스타트업은 보통 첫 번째로 망한다. 대기업은 거의 항상 두 번째로 망한다. 문제는 두 번째 죽음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아무도 자기가 관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협업"하고 "소통"하고 "합의"를 이루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죽어간다.


폴 그레이엄이 "파운더 모드"라는 글을 썼다. 에어비앤비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의 강연에서 영감을 받은 글이다. 체스키는 회사가 커지면서 주변의 조언을 따랐다. "좋은 사람을 뽑고, 그들이 알아서 하게 두세요." 듣기 좋은 말이다. 결과는 재앙이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운영한 방식을 연구하고,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YC 행사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창업자들이 줄줄이 고백했다. 자기들도 똑같은 조언을 받았고, 똑같이 망할 뻔했다고.


왜 모두가 창업자들에게 틀린 조언을 했을까?

폴 그레이엄의 답은 이렇다. 그들이 가르친 건 "창업자가 회사를 운영하는 법"이 아니었다. "전문 경영인이 남의 회사를 관리하는 법"이었다. 근본적으로 다른 게임의 룰북을 건네준 것이다. 창업자에게 그 방식은 고장난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고장났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뽑고, 그들이 알아서 하게 두세요."
이 말의 실제 의미는 이렇다. "전문적으로 포장하는 사기꾼들을 뽑고, 그들이 회사를 바닥에 처박게 두세요."

폴 그레이엄은 창업자들이 "가스라이팅"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썼다. 양쪽에서. 매니저처럼 운영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그 조언을 따랐을 때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보통은 주변 모두가 당신과 다른 의견이면 당신이 틀린 거다. 하지만 이건 드문 예외다. 창업 경험 없는 VC들은 창업자가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C레벨 임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능숙한 거짓말쟁이들을 포함한다.


관료 모드는 이렇게 생겼다.

모든 결정에 위원회를 만든다. 회의 전에 사전 회의를 한다. 회의가 끝나면 프로젝트 범위가 더 넓어진다. 아무도 결정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회의를 더 잡는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징계받는다. 사소한 일에도 복잡한 승인 절차를 만든다. 허영 지표를 축하한다. "임팩트"는 프로젝트에 몇 명이 붙었느냐로 측정한다.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면, 당신도 겪어본 것이다.


껍데기 예절 언어들이 있다.

협업. 합의. 포용. 양보. 안정. 위임. 존중. 배려. 이 단어들 중 나쁜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위험하다. 반박할 수가 없다.

"모두의 의견을 들어야죠." 맞는 말이다. "실수를 피하려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해요." 틀린 말이 아니다. "핵심 비즈니스를 위험에 빠뜨리면 안 되잖아요." 당연하다. "포용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해요." 누가 반대하겠나.

정신차려라.

이 좋은 말들이 프로세스로 변환되고, 위원회로 구현되고, 대규모로 산업화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아무것도 안 된다. 모든 것이 느려진다. 결정이 흐릿해진다. 책임자가 사라진다. 일이 죽는다.


관료는 관료를 채용한다. 승자가 승자를 뽑고, 패자가 패자를 뽑듯이.

회사가 "임팩트"를 팀 크기로 측정한다면? 사람들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제안할 인센티브가 생긴다. 승진이 관리하는 사람 수에 비례한다면? 채용을 늘릴 이유가 생긴다. 눈에 띄는 대형 프로젝트가 승진을 좌우한다면? 조용하지만 효과적인 일은 무시되고, 과시용 프로젝트만 넘쳐난다.

이렇게 조직은 합의와 프로세스에 능숙한 사람들로 채워진다. 그러다가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거나, AI 같은 기술 변화가 일어나면? 관료들은 관료적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년 애플에서 가장 중요한 100명을 모아 리트릿을 열었다. 조직도 상위 100명이 아니었다. 잡스가 직접 고른 100명이었다. 평범한 회사에서 이걸 하려면 얼마나 큰 의지가 필요할지 상상해보라. 하지만 잡스는 계속했다. 효과가 있었으니까. 폴 그레이엄은 이런 회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아직 파운더 모드가 뭔지도 제대로 모른다.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이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3명이 한 방에서 일하면 합의에 몇 주가 걸리지 않는다. 정보가 이미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있다. 의견이 다르면 바로 정리하거나, 그냥 시도해보고 안 되면 되돌린다. 관리해야 할 "관계"가 적으니까 산출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 껍데기 예절 언어가 필요 없다. 그냥 일한다.

대기업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관계가 너무 많다. 이해관계가 너무 얽혀 있다. 그래서 프로세스가 생긴다. 프로세스는 원래 좋은 것이다. 문제는 프로세스를 만든 이유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프로세스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이게 테크 산업의 생명 주기다.

공격적인 창업자가 이끄는 민첩한 스타트업이 등장한다. 스케일업을 위해 유능한 매니저들을 채용한다. 시장에서 이기고, 상장한다. 그러면 평화로운 시기에 끌리는 관료들이 슬금슬금 들어온다. 화려한 이력서를 들고. "포용"과 "합의"를 말하면서. 기업가적 사람들은 새 프로세스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관료가 장악한다. 창업자는 지치거나 은퇴한다. 회사는 관료 모드에 진입한다.

그리고 새로운 스타트업이 등장한다. 사이클은 반복된다.


폴 그레이엄은 희망적인 말로 끝맺었다. 우리가 파운더 모드에 대해 아직 이렇게 모른다는 게 오히려 고무적이라고. 창업자들이 이미 이만큼 해냈는데, 그게 전부 잘못된 조언을 거슬러 올라가며 이룬 것이라고. 제대로 된 방법을 알게 되면 얼마나 더 해낼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고.

존 스컬리처럼 운영하라는 조언 대신, 스티브 잡스처럼 운영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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