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세가 사라지는 세계

조정세가 사라지는 세계

미드저니(Midjourney)는 100명 남짓한 직원으로 연간 5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직원 1인당 매출이 500만 달러를 넘는다. 이게 얼마나 비정상적인 숫자인지 알려면 전통적인 기업과 비교해보면 된다. GM은 16만 명을 고용해 1,700억 달러를 번다. 1인당 100만 달러 정도다. 미드저니는 GM보다 5배 효율적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를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할 수 있다. 로널드 코즈(Ronald Coase)가 '기업의 본질'이라는 논문에서 던진 질문 하나. 기업은 왜 존재하는가? 모든 거래를 시장에서 하면 되지 않나? 코즈의 답은 간단했다. 시장에서 거래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적합한 공급자를 찾고, 협상하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행을 감시하는 모든 과정에 비용이 발생한다. 기업은 이 '거래 비용'이 내부 조직 비용보다 클 때 존재한다.

하지만 기업도 공짜로 운영되지 않는다. 직원이 늘어날수록 소통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경영진의 전략이 말단 직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왜곡된다. 부서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면 회의를 거듭해야 한다. 누가 어떤 일을 할지 정하고 그 결과를 검증하는 데 시간이 든다. 이게 바로 '조정세(Coordination Tax)'다. 기업이 비대해질수록 내야 하는 비만세 같은 것이다.

코즈는 이 조정세가 외부 거래 비용을 초과하는 지점을 '코즈의 천장(Coasean Ceiling)'이라고 불렀다. 기업은 이 천장을 넘어서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관리 비용이 너무 커져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0세기 내내 모든 기업은 이 천장 아래에서 살았다. 규모와 복잡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이 천장을 부수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인간의 개입 없이 정보를 인지하고, 추론하며, 실행한다. 조정 비용이 0에 수렴한다.


구체적으로 보자. 기존 조직에서는 A부서가 일을 끝내야 B부서가 시작할 수 있었다. 순차적이었다. 대출 심사를 예로 들면, 서류 검증팀이 끝나야 리스크 분석팀이 시작했다. 각 단계마다 사람이 검토하고 승인했다. 병목이 발생했다. 대기 시간이 쌓였다.

AI 에이전트는 병렬로 작동한다. 수십 개의 에이전트가 동시에 서류를 검증하고, 신용도를 평가하고, 리스크를 분석한다. 대기 시간이 사라진다. 병목이 없다. 순차적 프로세스가 병렬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바뀐다.

중간 관리자의 역할도 사라진다. 과거에는 정보의 문지기가 필요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전략을 아래로 전달하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데이터를 위로 보고하는 사람. 이들은 정보를 걸러내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하지만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적임자(혹은 적임 에이전트)에게 즉시 할당한다. 라우팅(Routing)이 자동화된다. 관리라는 행위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공유 메모리에서 온다. 인간 조직은 정보 비대칭 때문에 끊임없이 회의를 한다. "지난번에 말한 그 건 어떻게 됐죠?" 같은 질문이 오간다. 맥락을 맞추는 데 시간을 쓴다. AI 에이전트들은 벡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완벽하게 정보를 동기화한다. 누군가 새로운 사실을 배우면 모든 에이전트가 안다. 소통 비용이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소규모 팀이 거대 기업 수준의 복잡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미드저니가 100명으로 5억 달러를 버는 게 이상하지 않다. 샘 알트만(Sam Altman)은 더 나아가 1인 유니콘을 예측한다. 직원 없이 AI 에이전트만으로 10억 달러 가치를 만드는 창업가. 구매, 제조, 판매, 마케팅을 모두 에이전트가 처리한다. 창업가는 목표를 설정하고 결과를 조율할 뿐이다.


하지만 새로운 비용이 생긴다.

메모리 트릴레마(Memory Trilemma)라는 게 있다. AI가 과거의 모든 맥락을 기억하려면 정확성, 비용, 속도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대화 기록이 길어질수록 연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혹은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 혹은 정확도가 떨어진다.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동시에 최적화할 수 없다.

운영 인텔리전스 부채(Operational Intelligence Debt)도 쌓인다. 에이전트들이 일관되게 행동하도록 만들려면 프롬프트를 관리해야 한다. 도구의 신뢰성을 보장해야 한다. 에이전트 간 충돌을 방지해야 한다.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게 새로운 형태의 엔지니어링 비용이다. 자료에서는 이를 '새로운 제도적 세금(New Institutional Taxes)'이라고 부른다.

세무 문제도 있다. AI 에이전트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면 이걸 소프트웨어(SaaS)로 볼 것인가, 전문 서비스로 볼 것인가? 세금 부과 대상이 달라진다. 자료는 약 27억 달러 규모의 세수 위기를 언급한다. 규제 불확실성이 크다.


조정 비용은 사라지지만 기술적 조정 비용이 생긴다. 사람 간의 소통 비용이 시스템 간의 조율 비용으로 바뀐다.


그래서 기업은 어떻게 바뀌는가?

피라미드형 계층 구조가 평평한 네트워크로 바뀐다. 기능별 사일로(silo)가 해체된다. 대신 결과 중심의 '에이전트 팀' 네트워크가 생긴다. 소수의 인간이 다수의 전문화된 AI 에이전트를 감독한다. 인간은 실행보다 목표 설정에 집중한다.

새로운 직무가 생긴다. 에이전트 보스(Agent Boss). 사람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 노동력을 관리한다. 윤리적 조율과 산출물을 책임진다. 하이브리드 워커(Hybrid Worker)도 표준이 된다. 실시간으로 AI 에이전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일한다.

이건 단순히 업무 속도를 높이는 도구적 변화가 아니다. 기업을 구성하는 경제적 논리가 바뀐다. 코즈가 1937년에 설명한 '기업의 본질'이 달라진다. 거래 비용과 조정 비용의 균형점이 이동한다. 코즈의 천장이 사라지거나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노키아(Nokia)와 블록버스터(Blockbuster)를 떠올려보라. 이들은 변화를 거부했다. 기존 성공 방식에 안주했다. 도태됐다. AI 에이전트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기존 워크플로우에 AI를 끼워 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에이전트의 자율성을 중심으로 전체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고 있다. 인원수가 아니라 에이전트 조율 능력이 경쟁력이 된다. 거대 조직의 시대가 저물고 초고효율 소규모 조직의 시대가 온다. 1인 유니콘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 코즈가 살아 있었다면 자신의 이론이 이렇게 뒤집히는 걸 보고 뭐라 했을까. 아마 천장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을 뿐이라고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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